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9화

안서연이 눈을 떴을 때, 하승주와 서지우는 이미 아래층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녀가 내려오자 하승주는 재빨리 의자를 빼주고 이미 식어버린 죽을 건넸다. 아무 말 없이 평온한 얼굴로 아침을 먹는 안서연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의 얼굴에 살짝 미안한 기색이 스쳤다. “서연아,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며칠 출장을 다녀와야 해. 결혼식 관련한 건 플래너한테 맡기고 나는 최대한 빨리 일 마무리하고 돌아올게. 결혼식 끝나면 꼭 일주일 동안 네 옆에 붙어 있을게. 신혼여행은 네가 가고 싶은 곳이면 아무 데나 다 좋아.” 안서연은 이미 전날 밤에 그가 회사 일이 아닌 서지우를 달래러 간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승주가 나가기 전에 그녀는 그를 마지막으로 한 번 불렀다. “하승주.” 그는 멈춰서더니 익숙한 듯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서연아, 벌써 보고 싶은 거야? 며칠뿐이야. 우리 곧 결혼하잖아. 앞으로는 매일 내 얼굴 보게 될 거야.” 그 순간, 문밖에서 서지우의 소리가 들려왔다. 하승주는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서둘러 문을 나섰다. 안서연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마 오늘이 하승주와의 마지막이겠지.’ 그들이 떠난 직후, 안서연은 서지우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안서연 씨, 어젯밤에 다 봤겠죠? 와, 인내심이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승주 씨는 앞으로 며칠 내내 저랑 같이 있어 주기로 했어요. 결혼 앞두고 예비 신랑이 다른 여자랑 붙어 있는 건 어떤 기분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신부겠네요. 오늘은 저희 둘이 새집을 보러 가기로 했어요. 승주 씨가 말하길 앞으로 그 집이 저희 둘만의 집이 될 거라던데요? 시간 나면 놀러 와요.] 안서연은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가정부들을 시켜 저택 안에 있는 자신과 하승주의 모든 물건들, 함께 찍은 사진까지 몽땅 모아 뒷마당에 쌓게 했다. 한 가정부가 망설이며 커다란 웨딩 사진을 가리키더니 물었다. “아가씨, 이 사진도 밖으로 가져갈까요?” 안서연은 거실 중앙에 걸린 대형 웨딩 사진을 바라보았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녀와 그녀만을 바라보며 눈에 애정이 가득했던 하승주.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장면이 지금은 그저 조롱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가정부들은 조용히 사진을 떼어냈다. 모든 사진과 물건이 다 모은 후, 그녀는 직접 불을 붙였다. 그리고 조용히 서서 지난 5년의 기억이 불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재가 흩날릴 때, 그녀의 마음속 미련도 완전히 끝이 났다. 이제 떠나기까지 이틀이 남았다. 서지우에게서 또 메시지가 왔다. 이번엔 사진도 있었다. 확인해 보니 초음파 사진이었다. [어머나, 저 진짜 임신했나 봐요. 승주 씨의 첫 아이예요. 너무 기뻐서 자기 지분도 우리 아기에게 물려주겠대요. 근데 어젯밤에 너무 격하게 해서 그런가, 출혈이 있어서 의사가 침대에 누워 쉬라고 했어요. 승주 씨는 제가 너무 걱정돼서 손수 죽까지 끓여서 떠먹여 주더라고요. 저 진짜 너무 행복해요. 서연 씨도 저를 위해서 기뻐해 줄 거죠?] 안서연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웨딩드레스를 웨딩숍에서 찾아온 뒤, 가위로 조용히 그 옷을 갈기갈기 찢었다. 자신을 위해 만들어졌던 드레스는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떠나는 날에 서지우는 또다시 사진을 보내왔다. 손에는 큼지막한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었다. [승주 씨가 저에게 청혼했어요! 저랑 우리 아이가 절대 서운하지 않게 엄청 화려한 결혼식을 올릴 거래요. 안서연 씨, 이제 좀 눈치껏 사모님 자리를 내놓는 게 좋을 거예요. 승주 씨는 이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안서연은 이번엔 답장했다. [서지우 씨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라요.] 그 후 그녀는 별장 안의 CCTV 영상을 확인했다. 하승주가 서지우와 함께 이 별장에 들어와 여러 차례 자극적인 놀이를 한 장면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영상 속엔 둘이 거실에서 나눈 적나라한 순간도 찍혀 있었다. 그녀는 그 영상을 복사해 결혼식 플래너에게 보냈다. [이건 제가 갑자기 생각해 낸 승주 씨를 위한 서프라이즈예요. 결혼식 날에 대형 스크린에 꼭 틀어주세요. 꼭 비밀로 해주시고요.] 플래너는 바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영상 재생 타이밍을 세세하게 전달한 후, 안서연은 하승주의 영상 통화를 받았다. 그의 얼굴엔 미안한 기색이 비쳤다. “서연아, 여기 일이 아직 안 끝났어. 내일 아침쯤에나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걱정하지 마, 결혼식 전엔 꼭 갈게.” 안서연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결혼식에서 너에게 줄 깜짝선물도 준비했어.” 하승주는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우리 서연이가 내게 어떤 선물을 준비했을까? 너무 궁금한데? 서연아, 널 아내로 맞이할 날을 5년이나 기다렸어. 드디어 내일이야. 나 진짜 행복해...” 그의 갑자기 말을 끊고 몸이 굳더니 숨을 죽인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안서연의 눈에는 비웃음이 스쳤다. “하승주. 그 선물이 꼭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그녀는 그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고 저택을 나섰다. 위장 사망 대행 기관의 차량은 이미 저택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몇 가지 조작을 한 뒤, 직원에게 건넸다. “내일 이 휴대폰을 시신과 함께 신랑에게 전달해 주세요. 오후 6시에 사망한 걸로 알려주시고 폰 안에 있는 유서도 꼭 읽게 해주세요.” 오후 6시는 그가 영상 통화를 하며 서지우와 함께 신음을 흘리던 그 순간이었다. 그녀는 하승주에게 똑똑히 알리고 싶었다. 그 순간, 자신이 그로 인해 죽었다는 것을. 그 유언 몇 줄이 그 남자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이 되길 바랐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폰을 받았다. 그리고 새 신분증과 비행기 티켓을 그녀에게 건넸다. “초희 씨, 저희는 이번 이동 경로의 모든 CCTV 기록을 삭제할 겁니다. 앞으로의 삶에는 행복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초희는 그녀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과거를 뒤로하고 새 시작을 뜻하는 이름이다. 오늘 이후로 그녀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길로 나아갈 것이다.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