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서지우는 두 팔로 하승주의 목을 감싸안은 채 얼굴을 붉히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승주 씨, 안 돼요. 저 이제 정말 안 되겠어요...”
하승주는 그녀의 가슴에 고개를 묻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그 남자가 널 만졌잖아. 그래서 네 몸 구석구석 내 흔적으로 덮어야겠어. 내가 끝이라 하기 전엔 절대 끝낼 수 없어.”
서지우는 고개를 젖히고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근데 만약 안서연 씨가 보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승주는 동작을 멈추고 싸늘한 얼굴로 말을 끊었다.
“서연이는 귀가 안 들려서 눈치 못 챌 거야. 우리 일 절대 서연이 앞에서 입 밖에 내지 마.”
서지우는 억울한 듯 그의 가슴팍 위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말했다.
“알아요, 그냥 곧 안서연 씨는 당신의 아내가 되는데 저는 이렇게 그림자처럼 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픈 것뿐이에요.”
그녀의 나약한 말에 하승주는 마음이 조금 약해졌다. 그는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우리 질투쟁이, 너를 이렇게 집까지 데려온 것으로는 부족해? 걱정하지 마. 결혼하더라도 널 떠나진 않을 거야.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줄게. 서연이가 가진 건 너에게도 줄게.”
그제야 서지우는 다시 환하게 웃었다.
“그럼 결혼식 전까지는 계속 저랑 있어 줘요.”
하승주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녀의 촉촉한 눈동자를 보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지우는 눈을 반짝였고 곧장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지금도 당신이 너무 필요해요.”
하승주의 눈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두 사람은 다시 격렬하게 뒤엉켰다.
창밖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순간, 문밖에 서 있던 안서연의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는 입을 꼭 막은 채 울음을 참았다. 이미 눈물로 앞이 흐려져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이전에도 서지우가 보낸 도발적인 영상은 본 적 있지만 직접 눈으로 본 오늘 밤의 장면은 그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아팠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숨소리와 농염한 말들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그녀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 몸을 돌려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침실로 돌아온 그녀는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자신을 꼭 안았지만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귓가에 맴도는 끔찍한 소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귀를 막아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녀는 맨발로 계단을 뛰어 내려와 그대로 빗속으로 달려 나갔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단지 그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는 괴물 같은 저택으로부터 어떻게든 멀어지고만 싶었다.
적막한 거리 위를 무감각하게 걷던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비가 그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자 마치 과거의 하승주가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의 눈빛 속엔 애틋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서연아, 떠나.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서. 날 용서하지 마.”
그녀는 붉어진 눈으로 한때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반드시 그 사람에게서 떠날 거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해가 막 떠오를 무렵, 안서연은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젖은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잠시 후, 하승주가 살금살금 침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평소처럼 그녀의 이불을 정성스레 덮어주고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서연아, 내가 정말 사랑하는 건 너야. 이제 3일 뒤면 넌 내 아내가 되잖아. 우리 분명 오래오래 함께할 거야.”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혼잣말처럼 사랑을 고백했지만 정작 그의 품 안에 있는 안서연의 눈가에는 조용히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예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글귀가 떠올랐다.
[남자의 갑작스러운 사랑 표현은 대부분 바람피운 후의 죄책감이다.]
그땐 그 의미를 몰랐지만 지금은 뼈저리게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그녀가 바라는 건 단 하나였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흘러가 그를 완전히 떠나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찾아오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