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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눈을 떴을 때 신채이는 별장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과장된 웃음소리와 애니메이션 대사가 벽을 울릴 만큼 크게 들려왔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천천히 문을 열었다. 거실에서는 신소은이 다리를 꼬고 카펫 위에 앉아 과자를 껴안은 채 TV를 보며 포복절도하고 있었다. “언니 깼어?” 신소은이 고개를 돌리며 아직 웃음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해, 애니 보는데 조금 시끄러웠지?” 그러더니 일부러 과자를 와그작하며 크게 씹어 물었다. “내가 요즘 가슴이 좀 답답해서... 여기 별장 공기가 좋다길래 한섭 씨가 며칠 쉬라고 보내줬어. 괜찮지?” 신채이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소파로 향했다. 박한섭이 그곳에 앉아 긴 손가락으로 재무 보고서를 넘기고 있었다. 금테 안경 너머의 차가운 눈매는 한껏 집중하고 있었고 TV 볼륨이 얼마나 크든 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신채이 머릿속에 예전 일기장 속 문장들이 스쳤다. [내가 옆에서 사과를 먹었다는 이유로 한섭 씨는 오늘도 화를 냈다. 씹는 소리가 거슬린다며 당장 나가라고 한 것이다.] [그 사람이 서재에 있을 때는 숨소리조차 최대한 줄여야 한다.] ‘하, 지금은...’ 신소은이 과자 봉지를 일부러 크게 구기며 소리를 내고 TV에서는 과장된 격투 장면 소리가 울리는 데도 박한섭은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사랑과 무관심의 차이가 이렇게나 분명했다. 신채이가 입을 열려던 순간, 박한섭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때 그 사고가 없었으면 이 집은 원래 네 거였어.” 말투는 무심했고 시선은 여전히 문서에 꽂혀 있었다. “신채이는 그냥 남의 둥지에 들어온 사람이니까 너도 굳이 보고할 필요 없어.” “그래. 나한테 보고할 필요 없어.” 신채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얼마든지, 마음대로 있어도 돼.”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그러더니 박한섭은 웬일로 고개를 들어 눈을 가늘게 뜨며 신채이를 바라봤다. ‘이상하네. 예전이라면 벌써 울며 소리를 지르거나 눈을 부라리며 참고 있었을 텐데... 이렇게 차분한 반응을 보일 리가 없을 텐데...’ 하지만 그 낯섦도 잠시, 박한섭은 금세 흥미를 잃고 다시 문서로 시선을 돌렸다. 애초에 신채이와 관련된 일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신채이 역시 그의 마음 같은 건 더는 신경 쓰지 않았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 후 하루 종일, 신채이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으며 문밖에서는 계속해서 귀를 때리는 소음이 흘러나왔다. 신소은은 TV 볼륨을 최대치로 올려놓고 예능을 보다가, 또 하이힐을 신고 마룻바닥 위를 쿵쿵 걷다가, 급기야 박한섭이 몇십 년 동안 모아온 고급 와인을 열어 치킨과 함께 먹기까지 했다. 이 모든 행동이 과거 박한섭에게는 절대 금기되는 행동이었다. 신채이가 책장이라도 스치면 얼굴이 차갑게 굳었고 슬리퍼를 신고 바닥을 걸어도 표정이 일그러졌다. 와인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박한섭은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천천히 먹어. 아무도 안 뺏으니까.” 저녁이 돼서야 신채이는 문을 열고 나왔다. 식탁에는 이미 음식을 가득 차려둔 상태였고 신소은은 박한섭의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한섭 씨, 이거 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야!” “그래.” 박한섭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난 네 취향은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이에 얼굴이 붉어진 신소은은 문가에 서 있는 신채이를 발견하자 활짝 손을 흔들었다. “언니, 빨리 와서 밥 먹어!” 신채이는 말없이 식탁 반대편에 가서 앉았다. 이 집의 여주인은 신소은이었으나 현재는 그저 잠시 들른 손님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앞에 있는 반찬을 젓가락으로 집어 한입 먹었다. 그런데 두어 번 삼키자 갑자기 목이 따끔거렸다. 미세하게 얼굴을 찡그리며 다른 음식을 조금 맛보았지만 불편함은 점점 더 강해졌다. “언니, 왜 그래?” 신소은이 갑자기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언니 팔에 빨간 점 생겼어! 혹시 알레르기 있는 거야?” 신채이는 자신도 모르게 팔을 내려다봤다. 붉은 두드러기가 이미 팔 가득 번지고 있었다. 숨통이 점점 더 막혀왔고 말을 하려 했지만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간신히 응급약이 들어있는 자신의 가방을 가리켰고 신소은은 허둥지둥 일어나 가방을 뒤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신소은은 실수로 뜨거운 국그릇을 엎어버리고 말았다. “아!” 펄펄 끓던 국물이 이미 두드러기로 뒤덮인 신채이의 팔 위로 쏟아져 극심한 고통이 한순간에 밀려왔고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그때 박한섭이 번개처럼 달려왔으나 그가 품에 안은 것은, 신소은이었다. “어디 데인 데 없어?”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급하게 신소은의 손을 살폈다.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 점점 흐려지는 신채이의 시야 속,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신소은을 안고 나가는 박한섭의 뒷모습이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그녀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고 간호사가 링거를 갈아 끼우며 말했다. “알레르기가 이렇게 심한데 진짜 큰일 날 뻔했어요. 몸에도 2도 화상을 입었고... 이틀이나 지났는데 가족은 왜 아직도 아무도 안 오죠?” 신채이가 입술을 떼려 하는데 바로 그때 문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었어? 박 대표님이 이 층 전체를 통째로 빌렸다는데?” “응. 신소은 씨가 손을 조금 데인 것 때문에.” “완전 애지중지하더라. 좀 있으면 알아서 다 나았을 텐데...” 신채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저... 가족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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