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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임다영은 여기서 연시윤을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이번에도 그녀를 오해한 듯, 차가운 손길로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더니, 가냘픈 등을 냉랭한 벽에 그대로 밀어붙였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서늘했고 눈빛은 날이 서 있었다. “임다영, 경고하는데 그 더러운 속셈 집어치워. 한번 두번 우연을 가장해 내 앞에 나타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감히 우리 할머니까지 건드려? 네 배짱이 하늘을 찌르네.”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손목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아팠던 임다영은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며 외쳤다. “뭐 하는 거예요? 당장 놔요!” 무고함과 분노가 뒤엉킨 그 표정이 연시윤의 신경을 긁어댔다. “내 앞에서 그딴 연극 좀 집어치워. 안 그러면 내가...” 끝까지 말이 나오기 전에, 임다영이 몸을 비틀어 그의 손을 세게 물었다. “으악!” 손을 빼낸 연시윤이 낮게 숨을 삼키며 이를 갈았다. “임다영, 혹시 개로 환생이라도 했어?” 이 여자는 단순히 속이 검은 데서 그치지 않았다. 거칠고 예측 불가하며 그가 살아온 세계에서 본 어떤 상류층 여자와도 달랐다. 임다영은 숨을 고르곤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먼저 날 아프게 한 건 너잖아요. 이 미친놈아!” ‘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자기가 무슨 문주의 재판관이라도 된 줄 아는 거야? 그냥 제멋대로 화내는 미친놈이잖아!’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를 노려보다가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문 앞에는 이미 몇 명의 검은 양복 경호원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연시윤은 거의 한 미터 구십 가까운 키로 성큼 다가와, 가볍게 팔을 뻗어 그녀를 다시 붙잡았다. 임다영은 마치 사냥꾼 손에 걸린 토끼처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그는 그녀를 인근의 빈 병실로 던져 넣었다. “임다영, 잘 들어.” 위협이 짙게 밴 목소리가 허공에 가라앉았다. “지금은 너랑 장단 맞춰줄 시간 없어. 얌전히 여기 있어. 내가 돌아오면... 그때 네 죗값을 치르게 해줄 테니까.” 그 말과 함께 문이 ‘쾅’ 하고 닫혔다. 임다영은 분노에 치를 떨며 베개를 움켜쥐었다. 마치 연시윤의 머리라도 된 듯, 두 주먹으로 내리치고 발로 걷어찼다. 연시윤이 다른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할머니, 저 왔어요.” 박혜자는 손을 내저으며 환하게 웃었다. “시윤이 왔구나? 어서 앉아. 방금 회의 끝나고 바로 온 거지? 밥도 못 먹었을 텐데, 이리 와서 좀 먹어봐.” 연시윤은 의자에 앉으며 테이블 위의 반찬들을 훑어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진숙 아주머니가 만든 음식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걸 또 알아챘구나. 오늘은 아주머니가 고향에 내려가는 날이야.” 박혜자는 괜히 비밀이라도 있는 듯 눈을 반짝였다. “일단 먹어봐. 입맛에 맞는지부터 말해.” 입맛이 까다로운 연시윤이 할머니와 식사를 함께하는 건, 그저 맞춰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모양도 맛도 모두 그의 취향이었다. “맛있네요. 웬만한 호텔 셰프보다 나아요.” 그는 젓가락을 놓으며 물었다. “할머니는 이런 음식보다 집밥을 더 좋아하시잖아요. 요리한 사람은 누구예요?” 박혜자는 그의 반응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우연히 어떤 아가씨를 만났는데, 인성도 착하고 솜씨도 참 좋더라. 내가 보기에 너랑 꼭 맞아. 그래서... 할머니가 너 몰래 소개팅 자리를 좀 잡아놨어. 분명 서로 마음에 들 거야.” 연시윤은 관자놀이를 눌렀다. 이런 식으로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할머니, 저 그럴 생각 없다고 했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박혜자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 몸도 성치 않고 오래 살날도 많지 않은데... 죽기 전에 딱 하나 소원이라면 네가 가정을 꾸리고 평생 곁에서 널 지켜줄 사람을 만나는 거야. 그래야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지.” 그녀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게다가 그 아가씨, 내가 보기에는 정말 너한테 딱 맞아. 그냥 한 번 만나봐. 그걸로도 할미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연시윤은 입술을 꼭 다물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늘 말로만 그러시더니, 이번에는 정말 사람을 데려오셨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까지 마음에 들어 하시는 거지?’ 박혜자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고맙다. 네가 오기 전에 잠깐 나갔다가 곧 돌아온다고 했으니, 금방 올 거다.” 하지만 십여 분이 지나고 그 후로도 십오 분이 흘렀는데도 그 아가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정민이 급히 병실 문을 두드리며 들어섰다. “대표님,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육 대표님 행방이 파악되었다고 합니다.” ‘육 대표’는 이번에 연시윤이 진행 중인 대형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이었다. 성격이 괴팍하고 행방이 일정치 않아, 먼저 연락하지 않는 한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연시윤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 급하게 회사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 아가씨는... 다음에 뵙겠습니다.” 박혜자는 붙잡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지만, 그의 성격을 잘 알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다음에 꼭 만나게 해줄게.” 연시윤이 떠난 뒤, 정민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표님, 임다영 씨는 어떻게 할까요?” “별장으로 보내. 그리고 사람 붙여서 감시해.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게 하고 할머니 계신 곳 근처에도 얼씬 못 하게 해.” 연시윤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알겠습니다.” 정민은 고개를 숙여 대답한 뒤, 연시윤이 차를 타고 떠나자 곧바로 경호원 둘을 불렀다. “앞으로 임다영 씨는 너희가 맡아서 지켜.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 잠시 후, 두 경호원이 채워져 있던 병실 문을 열었다. 임다영은 베개를 껴안은 채, 마치 전투태세를 갖춘 작은 야생동물처럼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연시윤, 경고하는데 함부로!” 하지만 문밖에는 연시훈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곁에서 봤던 검은 양복 차림의 경호원 두 명이 서 있었다. “대표님 지시에 따라 앞으로 저희가 함께할 겁니다.” “연 대표님이 나를 감시하라고 시킨 거예요?” 임다영이 눈을 가늘게 떴지만, 경호원들은 대답 대신 허리를 숙였다. “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별장으로 모시겠습니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임다영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갑시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덧붙였다. “아, 그 전에 인사 좀 하고 갈게요...” 방금 병실에서 만났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돌아온다고 약속했는데, 이대로 가면 분명 걱정할 터였다. 그러나 경호원들은 길을 막은 채 한 발도 비키지 않았다. “저희를 곤란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대표님 지시는 신속히 별장으로 모시라는 겁니다. 불필요한 외출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결국 임다영은 그들을 따라 별장으로 향했다. 오랜 시간 끌려다니느라 지치고 허기까지 밀려왔다. 다행히 아침보다 배의 통증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게 별장에 묶여 있던 중, 휴대전화가 울렸고 발신자는 보육원 원장님이었다. 임다영은 서둘러 전화를 받으며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지영 이모, 저... 요즘 좀 바빠서 당분간 못 갈 것 같아요.” 하지만 들려온 건 낯선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이곳은 병원 응급실입니다. 혹시 보호자분이신가요? 사랑보육원에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민지영 원장님께서 아이들을 구하다 크게 다치셨고 현재 위독한 상태입니다. 가능한 한 빨리 병원으로 와 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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