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9화

임다영은 멍하니 서 있다가 연시윤이 차에 오르려는 순간 분노에 휩싸여 앞으로 달려가 두 팔을 벌려 그를 막아섰다. “말해요. 밥 안 먹겠다, 그건 그렇다 쳐도... 왜 사람 상처 주는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해요?” “비켜.” 연시윤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임다영은 조급해져 그의 옷깃을 붙잡았지만 그는 단번에 임다영의 손을 뿌리쳤다. 방심한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막 처치한 상처가 다시 터졌다. 연시윤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대로 정민의 차에 올라타, 표정 하나 변함없이 티슈 한 장을 꺼내 손을 닦았다. 머릿속에 스친 건 역겨운 상상뿐이었다. ‘그 여자는 클럽에서 챙긴 걸 빌미로 내 침대까지 기어들어 왔다. 이런 수법으로 남자 침대를 드나든 게 한두 번이겠나.’ 그런 여자를 치료해 주고 한순간이라도 마음이 흔들렸다는 게 스스로도 참을 수 없이 혐오스러웠다. ... 임다영은 천천히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울음을 참으며 마음속의 서러움을 꾹 눌러 삼킨 채 식당으로 돌아와 정성껏 차려진 음식을 바라보자, 코끝이 시큰해진 그녀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됐어. 내가 먹을 거니까.” 마음속으로는 두 번 다시 연시윤에게 직접 밥을 해주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 ‘차라리 개 밥 주는 게 낫지, 저 꽉 막힌 놈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야.’ 분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채, 그녀는 그 한 상을 모조리 비워냈다. 그러나 식사가 끝나자, 배가 터질 듯 부풀고 속이 뒤집혀, 화장실에 틀어박혀 변기에 매달린 채 토하고 또 토했다. 창문으로 햇살이 스며들 무렵에서야, 밤새도록 이런 난리를 쳤다는 걸 깨달았다. 지친 몸을 질질 끌고 침대에 쓰러지려던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가 중천인데, 아직 방에 처박혀 있어?” 문가에 선 건 김정숙이었다. “몸이 안 좋아요.” 임다영은 창백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런 말로 날 속이려 들어?” 김정숙은 비웃음을 흘렸다. “지금 당장 내려와. 아니면 당장 이 집에서 나가.” 임다영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아직은 연씨 가문에서 살아남아야 해. 그래야 임씨 가문을 무너뜨릴 기회가 올 거니까. 그렇지 않으면 안중식 하나도 해결하기 어렵지.’ 어제와 같은 일을 또 겪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순순히 김정숙을 따라 내려갔다. 김정숙은 그 모습을 보고 그나마 마음이 풀린 듯, 거실 소파에 앉았다. “잠이 덜 깬 거야? 차도 한 잔 안 올려? 기본 예의도 없네. 역시 천한 본성은 못 숨긴다니까.” 임다영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제가 직접 타드리면... 안 드실 거잖아요.” “그건 그래. 너 같은 애가 타온 걸 더러워서 어떻게 먹겠니!” 김정숙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혐오가 담겼다. “어제 시윤이 왔다가 왜 그냥 간 거야?” “몰라요.” 임다영은 어제 일을 떠올리자 다시 속이 울렁거렸다. 한편, 김정숙은 속이 타들어 갔다. 마음에 두고 있는 며느릿감 백유리가 곧 귀국하는데, 그 전에 연시윤의 ‘여자 기피증’을 반드시 고쳐야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쓸모없는 계집. 남자 마음 하나 못 잡아?” 조급한 마음에 결국 참지 못하고 호통을 터뜨렸다. 임다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붙잡아 봤자, 제가 연씨 가문 사모님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뭐라고?” 김정숙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 제가 잘못했어요. 사모님 가르침 대로 열심히 해볼게요.” ‘때로는 고개를 숙일 줄도 알아야 해.’ 임씨 가문에 발을 들인 지 십 년, 임다영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가르침?” 김정숙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 “네가 남자 꼬시는 건 끝내준다고 들었다. 우리 시윤이 침대까지 기어 올라갔다면 말 다했지. 나한테 배우겠다고? 웃기지 마. 난 상류층에서 자란 여자라, 너 같은 천한 년한테 가르칠 게 없어.” 그의 목소리가 한층 싸늘해졌다. “한 달. 더는 안 봐준다. 그 안에 성과 없으면 쫓겨날 줄 알아.” “네. 알겠습니다.” 임다영은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김정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너 이 집에 놀러 온 거 아니야. 사모님 흉내 내려는 것도 웃기고. 지금 이 별장 꼴이 엉망진창인데, 오늘 오전 안에 전부 치워. 쫓겨나기 싫으면!” 결국 임다영은 김정숙의 잔소리를 들으며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그제야 김정숙은 흡족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잊지 마. 한 달 내로 결과를 보여.” 문이 닫히자, 별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아침부터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한 임다영은 기운이 쭉 빠져 배를 움켜쥐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이러다 위염이라도 생기는 거 아니야? 안 되겠다, 병원부터 가야지...’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임씨 가문이 그녀의 통장을 동결한 지는 오래였다. 그 여파로 몇 년간 모아둔 장학금도 모조리 사라졌고 손에 남은 건 검사비나 겨우 낼 수 있는 몇 장의 현금뿐이었다. 텅 빈 주머니를 더듬자, 씁쓸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이대로는 안 되겠네. 일이라도 해야겠다...’ 긴 줄 끝에 서서 기다린 끝에 마침내 검사를 마쳤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려면 최소 한 시간은 더 걸린다고 했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자, 또다시 속이 울렁거렸다. 임다영은 숨을 고르며 병원 뒤뜰로 나가 바람을 쐬었다. 그때, 멀리서 환자복을 입은 할머니 한 분이 보였다.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에는 무겁게 늘어진 장바구니를 힘겹게 들고 있었다. 마침 심심했던 임다영이 다가가서 인사했다. “할머니, 제가 들어드릴게요.” 박혜자는 얼굴이 뽀얗고 단정한 임다영을 보자, 단번에 호감이 생겼다. “그래, 고맙네.” 임다영은 박혜자를 따라 VIP 병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환자를 위한 전용 주방까지 있었다. 마침 오늘 주방장이 고향에 다녀오느라 자리를 비웠고 박혜자는 매일 같이 먹는 영양식이 지겨워 직접 좋아하는 음식을 해 먹으려 했다. 임다영은 박혜자의 입맛을 물어가며 채소를 씻고 썰었다. 그녀의 손놀림은 빠르고 능숙했다. “우리 손자가 아가씨 반만이라도 효도하면 좋겠네. 나를 병실에 던져놓고는 신경도 안 쓰고...” 박혜자는 혀를 찼다가 이내 웃으며 덧붙였다. “내 손주며느리가 아가씨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전생에 덕을 쌓아야 아가씨 같은 좋은 아내를 얻을 텐데.” 뜻밖의 칭찬에 임다영은 얼굴이 붉어졌다. 식사가 끝난 뒤, 박혜자는 더욱 감동한 듯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아가씨는 어디 살아?” 임다영은 대충 둘러대며 자신이 고아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혜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다정하게 손등을 두드렸다. “이렇게 착하고 예의 바른 애가 드문데, 고아면 어때. 아가씨만 괜찮다면 이따 내 손자가 병문안 오기로 했는데, 한번 만나볼래?” 박혜자의 그 따뜻한 호의가 웃기기도 하고 묘하게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그녀의 마음을 거절로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임다영은 웃으며 말했다. “네, 기회가 되면요.” 박혜자가 번호를 주려던 찰나, 임다영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할머니, 제가 검사 결과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다녀와서 다시 얘기 나눌게요.” “그래, 얼른 다녀오렴. 할미는 여기서 기다릴게.” 임다영이 병실을 나서는 순간, 뜻밖에 나타난 남자의 품에 부딪혔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손목이 꽉 잡혔고 싸늘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네가... 왜 여기 있어?”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