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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경호원들이 잠시 서로 눈을 마주쳤다. 지금까지 연시윤이 ‘처리하라’고 지시하여 찾아간 사람들은 대개 기겁하며 무릎을 꿇었거나 심한 경우 그 자리에서 오물을 지릴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저 앳돼 보이는 여자애가... 겉으로는 겁도 많아 보이는데 왜 이렇게 태연하지? 아니, 오히려 뭘 기대하는 눈빛인데?’ 하지만 그들은 망설일 틈도 없이 임다영을 차에 태웠다. 차 안에 오른 임다영은 주위를 훑어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 혼자예요?” ‘임씨 가문 놈들은 어디 간 거지? 설마 계획이 틀어진 걸까? 연시윤이 나만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저희는 윗분의 지시를 따를 뿐입니다. 대표님께서 데려오라고 지시한 건 임다영 씨뿐입니다.” 불안해하던 임다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정말요? 연시윤 대표님을 볼 수 있다고요? 지금쯤이면 화가... 많이 났겠죠?” 더 묻고 싶었지만, 철통 보안을 엄수하는 경호원들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임다영은 이를 악물었다. ‘좋아, 기회가 한 번 더 있다는 거네. 이대로 혼자 죽기에는 아깝지. 임씨 가문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전부 끌어들여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해.’ ... 연씨 가문 소유의 고급 개인병원. 정민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대표님, 건강검진 결과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각 항목 전부 정상 범주이고 어젯밤에 복용하신 약물은 일반 수면제뿐이었습니다.” “수면제? 말도 안 돼.” 연시윤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어젯밤 일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여자가 특별한 약물을 쓰지 않았다면 내가 혹했을 리가 없잖아... 분명 환각을 일으키는 약물을 먹였을 거야. 수면제는 말도 안 돼!’ “대표님, 임다영 씨 데려왔습니다.” “들여보내.”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울렸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임다영이 방 방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녀는 죽을 각오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연시윤과 시선이 맞닿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어젯밤에는 복수에 눈이 멀어 그 살기를 외면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저 눈앞에 서 있을 뿐인데도 매서운 매의 눈빛이 심장을 꿰뚫을 것만 같았고 자칫하면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연시윤의 입매가 서늘하게 비틀렸다. 그 눈빛에는 노골적인 혐오가 서려 있었다. ‘어젯밤에는 그렇게 적극적이고 당돌하더니... 오늘은 내숭 떠는 컨셉인 건가? 가증스럽군.’ “말해. 어젯밤 네가 쓴 약물이 뭐야.” 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고 단호했다. “저... 저도 잘 몰라요.” 임다영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어제 클럽에서 산 싸구려 수면제 같은데... 필요하시면... 여기 반병 남았어요.” 그녀가 주머니에서 꺼낸 건 작은 갈색 병이었다. 순간 연시윤 주위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클럽에서 산 거라고? 속이 보통 검은 게 아니네.’ 연시윤의 결벽증을 아는 정민이 재빨리 약병을 받아 검사실로 보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터였다. 연시윤은 당장이라도 임다영을 목 조르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에 화를 가라앉혔다. 그는 소파에 기대어 앉아 넥타이를 풀었다. 셔츠 단추 서너 개가 풀리자, 나른해 보이는 겉모습 아래로 단단히 조여진 근육과 숨은 힘이 은근히 드러났다. “에헴...” 임다영은 얼굴이 붉어졌다. 머릿속에서 번쩍 스친 어젯밤의 잔상을 애써 눌렀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연시윤이 낮게 쏘아붙였다. “그 더러운 생각... 거두는 게 좋을 거야.” ‘티 났나? 내가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안 거지?’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전혀 아닙니다.” 임다영은 어떻게든 해명하고 싶었지만 연시윤은 그 변명을 끝까지 들어줄 마음이 없었다. “저기... 연시윤 대표님...” 그때,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연시윤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임다영!” 그의 목소리가 한층 차갑게 가라앉았다. “난 너한테 책임질 생각 없어. 고작 하룻밤으로 신분 바꾸려 수작 부리는 너 같은 여자는 수도 없이 봤거든.” “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니, 난 애초에 죽으러 온 건데... 죽는 것도 쉬운 게 아니네? 소문대로라면 벌써 날 없애야 했는데... 뭘 망설이는 거지?’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정민이 들어왔다. “대표님, 결과 나왔습니다만... 혈액 샘플 정밀 검사 결과와 동일합니다...” ‘임다영, 네 수법이 상상 이상이라는 얘기네? 연씨 가문은 세계 최고의 의료 장비를 갖췄는데도 못 잡아낼 정도라니.’ 연시윤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알겠어. 다 나가. 그리고 문 잠가.” 정민이 나가기 전 임다영을 향해 잠시 동정 섞인 눈빛을 보냈다. ‘앞날이 창창한데... 이번 생은 여기서 끝이겠구나.’ 정민이 나가고 ‘철컥’ 문이 잠겼다.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임다영은 본능적으로 물러섰지만, 곧 차가운 벽에 부닥쳤고 질식할 듯 짙은 죽음의 기운이 전신을 덮쳤다. 연시윤의 손이 그녀의 턱을 거칠게 틀어 올렸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은 냉혹했고 그 속에 서린 살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는 한 글자씩 힘을 눌러 말했다. “임다영, 참 대단하긴 하네. 내가 쉽게 알아낼 수조차 없는 고급스러운 수법을 썼다니. 지금이라도 솔직히 말하면 네 목숨은 살려줄 수도 있어.” 연시윤은 훈련된 몸이었다. 정신이 또렷해진 지금, 어젯밤과 달리 그의 손아귀 힘은 뼈마디를 으스러뜨릴 만큼 강했다. 임다영은 죽음보다 고통이 더 두려웠다. 하얀 피부 위로 붉은 자국이 번졌고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저... 저 정말 몰라요...” ‘내가 무슨 수법을 썼다고... 그냥 클럽 입구에서 산 싸구려 수면제 하나 먹였을 뿐인데. 정밀 검사까지 했다면서 왜 이렇게 겁을 주는 거야?’ 임다영의 순진한 얼굴에 연시윤의 짜증이 치밀었다. “말해! 아니면 네 가족들까지 전부 같이 산 채로 묻어버릴 거야.” 임다영은 순간 멈칫했다. ‘오호라? 그거야말로 잘됐네?’ 연시윤은 임다영의 표정 변화를 읽었는지 더 세게 몰아붙였다. “좋아, 너는 살려두지. 대신 네 가족들이 하나씩 고통스럽게 죽는 꼴을 두 눈으로 보게 될 거야.” 낮고 거친 목소리가 악마의 속삭임처럼 임다영의 귓가를 훑었다. 그가 폭발 직전이라는 걸 알아챈 임다영은 마지막으로 불을 질러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연시윤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발끝으로 몸을 세워 차갑게 닫힌 그의 입술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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