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4장 양보

“너희 둘 싸우는 거 멀리서부터 들었어.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러면 꼴이 우스워지잖아. 수호 씨, 정우야, 너희 고등학교 동창 아니니? 고작 몇 년 못 봤다고 다 잊은 거야?” 임영철은 두 사람을 화해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오늘 입고 온 슈트처럼 화이트와 블랙으로 극명하게 나뉘었고 서로 어우러질 수가 없었다. 샹들리에가 연회장을 환히 비췄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임영철의 말에 두 사람의 사색은 10년 전으로 돌아갔다. “임정우, 졌으면 깔끔하게 인정해. 내일부터 용산에서 너 보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 썩 꺼져.” “내가 양보하지 않았으면 네가 이길 수 있었을 것 같아? 한수호, 기억해. 너는 내가 원해야 나를 이길 수 있어.” 소년 시절의 두 사람은 고집이 셌고 혈기 왕성했다. 모순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었고 그 뒤로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발전하게 되었다. 절대 말 몇 마디로 풀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임영철은 두 사람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이렇게 말했다. “예전 일 기억 안 나면 말지. 앞으로 다 용산에 있으니까 다시 친해질 기회는 많을 거야. 백짓장도 맞들면 가볍다는 말이 있잖아. 앞으로 사업하면서 서로 돕고 그래.” 한수호가 차갑게 말했다. “임 대표님 얼굴 뵈었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뒤에 회의는 제 비서가 대신 참석할 거예요. 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벌써 간다고? 한수호 씨, 잠깐만. 한수호 씨.” 임영철이 불렀지만 한수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연회장을 나선 순간 한수호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먹구름이 용산의 하늘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한수호는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오늘 임정우가 나타날 거라는 걸 예상했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너무 역겨워 화를 억제할 수가 없어 더는 한 공간에 머물러 있기 싫었다. 10년 전 복싱관에서 글러브도 끼지 않고 서로 주먹을 날렸던 것과 작년, 아니 재작년 설 전날에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이서아가 임정우를 꽉 끌어안는 장면이었다. 차로 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