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5장 나를 구할 거야

이서아는 사실 그날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그날의 일은 거의 기억도 나지 않았다. 사람은 종종 고통스럽고 두려운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잊거나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이는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이다. 정신적인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 못지않게 아플 수 있으니 말이다. 이서아가 기억하는 것은 그날이 여름이었다는 것뿐이다. 그때 그녀는 매우 바빴고 반달 가까이 연속으로 야근을 했으며 며칠은 아예 회사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짧은 오전 동안 고객을 만나 계약을 체결하고 마케팅 부서와 회의를 하여 계획을 논의했으며 한수호의 다음 주 일정을 중요도와 관계를 고려해 정리해 두었다. 마지막으로 확인을 받기 위해 한수호의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그는 없었다. 하은영이 마침 그녀 앞을 지나가길래 물었다. “은영 씨, 한 대표님 어디 계셔요?” “서아 씨, 잊었어요? 오늘 용산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 한 대표님께서 초청받으셔서 조인영 씨를 데리고 가셨어요.” ‘아, 맞다. 그랬었지.’ 이서아는 손에 든 서류로 자신의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요즘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자꾸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느낌이에요. 머리까지 멍한 게 이상해요.” 그러자 하은영이 웃으며 말했다. “6개월에 한 번 있는 결산 시즌이잖아요. 나도 어지러워요. 이 시기만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이서아는 손에 든 서류를 바라보며 결심했다. “내가 용산 대학교에 가서 한 대표님 모셔올게요. 이 일정은 돌아가는 차 안에서 확인받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가 없어서요.” 하은영은 주먹을 쥐며 응원의 제스처를 보냈고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일로 돌아갔다. 이서아는 서류를 챙기고 가방을 메고 아래로 내려갔다. 한낮이라 도로에 택시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차량 호출 앱을 이용했다. 핸드폰을 내려다보는데 여름의 뜨거운 햇빛이 너무 밝아서 손으로 화면을 가려야 글씨가 보였다. 바로 그때, 갑자기 이서아 앞에 승합차 한 대가 급정거하며 멈췄다. 순간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섰지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