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4장 이혼 안 해

그날 뒤로 이서아는 마치 이 세상에서 증발하기라도 한 듯 전화도 카톡도 받지 않았다. 권소혜는 스카이 별장으로 한수호를 찾으러 갔지만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한수호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도우미의 말에 권소혜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도 별다른 답변을 주지 못했다. 의심을 버릴 수 없었던 권소혜는 친구에게 찾아보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서아가 정말 안전하게 이곳을 떠났다면 자기를 걱정할 것을 대비해 연락을 아예 끊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목요일이 되었다. 권소혜와 여진수의 이혼 조정 날이기도 했다. 절차에 따라 재판이 열리기 전 형식적인 협의 단계가 있었지만 권소혜가 기어코 이혼하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바로 재판 단계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여진수는 지각한 것도 모자라 오자마자 협의관에게 나가달라고 했다. “제 와이프는 제가 달랠게요.” 협의관은 난감한 표정으로 잠깐 망설이더니 일단 현장에서 나갔다. 권소혜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재판 시작 전에 이혼해 준다면 앞으로도 친구로 지내고 좋지. 미운 정도 정이라고 너무 막장으로 나가긴 싫거든.” 여진수가 다리를 꼬자 접이식 의자가 시즌의 가죽 소파가 된 듯한 기시감이 들었고 그 모습이 방탕하면서도 매혹적이었다. “난 이혼 안 해. 임신했는데 이혼은 무슨 이혼이야? 태어나자마자 아빠를 잃게 할 수는 없어.” 권소혜가 멈칫하더니 눈꺼풀을 들었다. 여진수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부정하려 하지 마. 초음파 사진까지 가지고 있으니까.” 권소혜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어떻게 손에 넣은 거야?” “임신한 게 아니라면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낼 필요가 없었지. 그 성격에 조금이라도 증상을 보이면 바로 병원으로 향했을 거야. 일분일초를 헛되이 쓰지 않는 게 너의 업무 스타일이니까 로펌에서 제일 가까운 메디컬 센터로 갔을 게 뻔하지. 그런데 마침 그 병원에 지인이 있더라고.” 여진수의 말투는 꽤 얌전한 편이었지만 권소혜의 귀에는 우쭐대는 것처럼 들렸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