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5장 묘비

여진수는 법원에서 나오자마자 안승원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권 변호사랑 이혼하는 날 아니야?” 안승원은 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따듯하게 품어주는 큰형처럼 이렇게 물었다. 여진수가 느긋하게 말했다. “이혼 안 하기로 했어. 아이까지 있는데 이혼은 무슨 이혼. 남은 인생 서로 맞춰가면서 사는 거지.” “그래서 누가 맞추기로 했는데? 권 변호사님이야, 너야?” 여진수가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내가 맞춰줘야지. 내가 소혜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안승원도 더는 농담하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 “병원에 수호 보러 좀 다녀오려고.” 여진수도 잠깐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같이 가자.” 한수호는 그날 그렇게 쓰러지고 병원에 실려 간 지 한주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퇴원하지 못하고 있었다. 칼에 손바닥과 팔목을 심하게 상했지만 바늘로 잘 꿰매고 항생제까지 맞았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밀 검진을 했는데 기침이 끊이질 않는 원인이 폐에 자라난 작은 종양때문이라고 했고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안승원과 여진수가 병원에 도착해보니 한수호는 침대 머리에 기댄 채 링거를 맞으며 서류를 보고 있었다. 안승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는 아픈 애가 무슨 서류를 보고 있어?” 한수호는 안색이 여전히 창백했다. “몸은 별문제 없어. 계약서 잠깐 보는 거니까 괜찮아.” 여진수가 혀를 끌끌 찼다. “그 말은 와이프도 사라졌는데 일이 손에 잡히냐는 거야.” “내 손으로 죽였는데 안 잡힐 리가 있겠어?” “...” 둘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이서아를 죽이고 바다에 버린 것도 모자라 스카이 별장에 남긴 이서아의 물건을 전부 정리해 봉천진으로 보내버렸다. 하지만 봉천진 이씨 저택은 노부부도 객지에서 죽은 터라 사람이 없었다. 다시 말해 폐가나 다름없었다. 그가 이서아에 대한 감정을 정리한 것처럼 그 집도 영원히 다시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서아의 언니와 김하나도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고 권소혜는 여진수가 지키고 있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