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1장 범인은 따로 있어.

그때도 두 사람이 같이 지낼 때였다. 전날 저녁부터 권소혜는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고 계속 배를 움켜잡고 있었다. 여진수가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권소혜는 곧 생리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괜찮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여진수가 여전히 자고 있는데 옆방에서 권소혜의 신음이 들려왔다. 사실 계속 이상한 예감이 들어 깊게 자지는 않았던 터라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그쪽으로 달려갔다. “작은고모, 왜 그래?” 권소혜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배를 부여잡고 말했다.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데려다줄게.” “오지성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줘.” 그때까지만 해도 권소혜의 눈에 여진수는 가출한 비행소년일뿐 믿음직스럽지 못했고 오지성이야말로 권소혜의 남자 친구였다. 권소혜를 짝사랑하던 여진수는 오지성을 질투했고 권소혜가 말한 대로 해주기 싫어 그 말을 못 들은 척 흘려넘기고는 권소혜에게 외투를 챙겨다 입혀주고 번쩍 안아 들었다. 권소혜는 깜짝 놀랐다. 어리게만 보이는 남자애의 몸에서 이렇게 큰 힘이 나온다는 게 신기했다. 여진수는 권소혜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접수하고 차례가 되길 기다렸다가 검사하기까지... 재벌집 도련님이라 말하지 않아도 아래 사람들이 알아서 챙겨줬고 필요한 게 있으면 입만 열면 바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핸드폰을 손에 쥐고 모르는 게 있으면 인터넷을 조회하며 검사가 끝날 때까지 권소혜를 데리고 다녔다. 결국 급성 맹장염으로 확진되었고 바로 수술해서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여진수도 그때 고작 17살이었기에 나이가 어렸다.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심각한 병인 줄 알고 권소혜를 수술실까지 데려다주는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권소혜는 그런 여진수가 웃겼는지 여진수의 손을 꼭 잡아주며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 괜찮아.” “정말?” “당연하지. 나 백 살까지는 살 거야.” “약속해야 해.” “약속할게.” ... 수술실의 불은 다섯 시간이 지나서야 꺼졌고 안에서 외국인 의사 두 명이 걸어 나왔다. 여진수는 앞으로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