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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홍서윤의 출국 절차가 마무리되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동안 입었던 옷들은 전부 최태준이 사람을 시켜 사준 것이었다. 최씨 가문을 떠날 때 그녀는 몇 벌만 챙겼고 나머지는 학교 근처에서 새로 사기로 했기에 캐리어 하나 분량만 나왔다. 책상 위의 면접 서류를 본 홍서윤은 잠시 멍하니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다행히 미리 교수님께 양해를 구했던지라 그녀의 이름은 수상자 리스트에 적혀 있지 않았다. 만약 그날 최태준이 자신의 이름을 보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알 수 없었다. 처음 금상을 받았을 때 최태준과 그 기쁨을 나누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 마음조차 사라졌다. 그녀는 이제 조용히, 누구에게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떠나고 싶었다.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려오며 회억을 마치게 되었다. 우연이 그녀에게 전화한 것이었다. 핸드폰을 귀에 대자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윤! 유지욱 그놈이 잡혀갔대! 공금 횡령이라던데 지은 죄가 꽤 심각한가 봐. 몇 년은 감방에서 썩을 거라고 했어!” “아, 그래! 그놈이 최태준한테 가서 살려달라고 애원도 했었다는데 어떻게 된 줄 알아? 최태준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대!” 최태준이 유지욱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건 조금 의외였지만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일과 관련된 문제라면 최태준은 인정사정도 봐주지 않았고 상대가 누구든 그의 이익을 해치면 끝장나게 되었다. 이번에 유지욱은 최태준의 인내심 한계를 건드린 셈이었다. 홍서윤은 저녁에 우연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저녁. 홍서윤은 우연과 자주 가던 샤부샤부 가게에 가서 한 상 가득 음식을 시켰다. 우연은 술을 한 잔 마시더니 홍서윤이 떠난다는 생각에 눈물이 터져 목소리까지 메여버렸다. “서윤! 네가 가면 난 누구랑 밥 먹으라고! 흐엉, 항상 나랑 밥 같이 먹었으면서 떠나기 있어?!” 홍서윤은 웃으며 우연에게 고기를 집어주었다. “생이별하는 것처럼 말하지 마. 내가 간다고 다시 안 돌아올 것도 아니잖아.” “차라리 안 돌아왔으면 좋겠어. 그래야 그 귀찮은 인간들이랑 다시는 안 부딪히게 되잖아.” 우연은 고기를 질겅질겅 씹어먹었다. 홍서윤이 막 말을 하려던 순간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인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누군데?” 우연은 그런 홍서윤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물었지만 홍서윤은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핸드폰 너머로 여자의 특유한 나긋하고도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신자는 바로 유아람이었다. “서윤아, 바빠?” “할 말이 있으면 하세요.” 홍서윤은 그녀와 쓸데없는 대화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게 말이지. 내가 병원에 목걸이를 두고 와서 그러는데 네가 좀 찾아서 가져다줄래? 심부름 값은 네가 원하는 만큼 줄게.” 유아람의 어투는 가벼웠고 홍서윤은 무시할 생각이었다. “끊을게요.” “사천만 원!” 홍서윤은 잠시 멈칫했고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의 그녀는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고 게다가 사천만 원을 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연아, 마저 먹고 있어. 나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 먼저 갈게.” 홍서윤은 유아람이 알려준 병원의 병실로 가서 서랍 속에 있는 목걸이를 찾아냈다. 하지만 손에 쥔 순간 이 목걸이가 어떤 목걸이인지 바로 알았다. 2년 전 홍서윤은 우연히 이 목걸이를 찾아내게 되었다. 최태준의 방을 정리해 주다가 옷장 깊숙한 곳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힐끗 보기만 했는데 최태준은 이성을 잃고 무섭도록 차가운 얼굴로 변해버렸다. “누가 그걸 건드리래! 당장 제자리에 놔!” 손에 든 목걸이 상자는 바로 빼앗겼고 마주하고 있는 건 차갑고도 무정한 최태준의 눈빛이었다. 설명하고 싶었지만 최태준은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이 목걸이는 영원히 네 것이 될 수 없어. 홍서윤, 넌 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그날 이후 그녀는 알게 되었다. 이 목걸이는 최태준의 어머니인 김선희가 남긴 것이고 오로지 아내가 될 사람만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홍서윤은 목걸이를 챙겨 유아람을 찾으러 갔다. 유아람은 클럽에 있었고 홍서윤은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유아람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룸의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홍서윤이 노크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들려오지 않아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 목걸이만 두고 떠나려 했다. 그런데 귀에 낯뜨거운 소리가 들려 얼굴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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