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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가영아, 우리 이제 불가능하다는 거 알아. 난 그저...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어.” 초췌한 얼굴에 그나마 옷차림은 깔끔했다. 흰 셔츠에 청바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옷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는 더 이상 어린 시절 나를 설레게 했던 소년이 아니었다. 하지만 두 눈 가득 찬 애절함은 나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아직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못 한 듯싶었다. 과거 내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그는 단 한 번도 믿어주지 않았다. “좋아.” 내가 마침내 승낙했다. 7년간의 감정에 이제는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되었다. 우리는 카페에 서로 마주 앉았다. 긴 침묵 끝에 배승훈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것 하나만 묻자. 그해 서아가 귀국하지 않았다면 넌 나랑 결혼해줬을까?”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메리카노는 쓰지만 쌉싸름한 뒷맛이 좋았다. “아마도 했겠지.” “설령 윤서아가 돌아온다 해도 너만 확고하게 날 선택했다면 내 대답은 예스야.” “다만 인생에 ‘만약’은 없지.” 나는 아주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정말 이 감정을 다 내려놨으니까. 내가 이렇게 흔쾌히 대답할 줄은 몰랐던지 배승훈은 처음에 흠칫 놀라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꾹 참고 목소리까지 파르르 떨렸다. “사실 난 오래전부터 너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아. 다만 나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야.” “널 이렇게 놓쳐버린 게 너무 후회돼.” “미안해. 앞으로 다시는 귀찮게 안 할게.” 배승훈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걷다가 대뜸 멈춰 섰다. “가영아, 행복해라.” 말을 마친 이 남자는 어깨를 격하게 떨면서도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 아마도 울고 있겠지... 이제 정말 후회하나 보다. 하지만 우리의 감정은 엎질러진 물이 됐고, 배승훈은 날 옆에 두고 한눈판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배승훈이라는 한 페이지가 그렇게 내 세상에서 완전히 넘어갔다. 1년 후, 나는 서이준과 결혼했다. 그는 기어코 혼전 계약서에 서명하길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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