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그래, 있었어. 하지만 사라졌어.’
무언가가 목에 걸린 듯 답답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꾹 참았다.
입을 연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이를 위해 복수를 해줄 리도 없었다.
그의 반응을 보아하니 약을 탄 일과는 무관한 듯했다.
박재현이 아무리 냉정하고 계산적인 사람일지라도 여자의 몸에 손을 쓰는 비열한 짓까진 하지 않을 거라 믿고 싶었다.
눈가가 붉어졌지만 고성은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힘겹게 내뱉었다.
“박재현,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가 네 아이를 낳을 거라 생각한 거야? 세상에 괜찮은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는 입꼬리를 비틀며 쓴웃음을 지었다.
“서로 같은 생각이라면 굳이 이 문제로 길게 말할 필요도 없겠지. 할아버지는 당장 강세린을 받아들이진 못할 거야. 내가 바라는 건 별거 없어, 그저...”
그의 말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고성은은 순간 알아챘다. 그가 이렇게까지 찾아온 건 결국 그 여자 편을 들어달란 뜻이었다.
“박 대표님, 저를 너무 높이 평가하시네요. 전 여자 하나 때문에 질투하고 집착하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강세린이 얌전히만 있으면 제가 괜히 시비 걸 일도 없겠죠.”
고성은은 한층 싸늘해진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박재현은 그 말에 안도하는 듯 가볍게 숨을 내쉬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어딘가가 쓰렸다. 그녀가 이렇게 단호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마주하니 낯설게 다가왔다.
“이제 늦었어. 난 자야겠어.”
고성은은 다시 한번 그를 돌려보내려 했다.
그러나 그는 돌아갈 기색 없이 방 안을 서성이더니 답답한 듯 넥타이를 풀어 젖혔다. 살짝 드러난 단단한 가슴팍이 어두운 방 안에서 은근히 빛났다.
이내 그는 익숙한 말투로 명령하듯이 말했다.
“배고파. 뭐 좀 해줘.”
그가 이렇게 직접 무언가를 요청한 건 3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고성은은 잠시 멈칫했다. 눈이 조금 커졌다가 금세 다시 무표정한 얼굴을 했다.
“냉장고에 마땅한 재료는 없어. 국수 정도는 가능해. 괜찮으면 끓여줄게.”
“좋아.”
말은 짧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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