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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이혼 서류에 사인했고 내일 소포로 보낼 테니까 받아.] 이 문자가 하예원의 시야에 들어왔다. 놀란 얼굴로 내용을 빤히 보더니 긴 속눈썹이 심하게 파르르 떨렸다. 고개를 들어 식탁 위에 가득한 음식을 보았다. 이미 식어버린 지 오래였고 식탁 정중앙에는 케이크가 외로이 배치되어 있었다. 케이크 위에는 아직 불을 붙이지 못한 초도 두 개 있었다. 오늘은 그녀가 23살이 되는 날이었다. 그런데 남편이라는 작자는 함께 있어 주기는커녕 이혼하자는 이런 서프라이즈를 주고 말았다. 띵, 띠링. 이때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며 실시간 뉴스 기사 알림이 떴다. [단독! 톱배우 윤희설, 도원 그룹 최도경 대표와 오붓한 저녁을 먹고 있는 것이 확인되어 재결합으로 추정!] 하예원의 눈빛이 심하게 떨리며 기사를 꾹 눌러보았다. 그러자 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 아름답고 우아한 기품의 여자는 고귀하고 점잖은 분위기의 남자와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레스토랑의 은은한 조명 탓인지, 아니면 각도가 문제인 것인지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 있는 듯한 착각을 주게 했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가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거실 밖에는 이미 눈이 두껍게 한층 쌓인 상태였다. 하예원은 어느새 캐리어를 들고나와 트렁크에 실었고 시동을 걸어 별장을 나설 생각이었다. 3년간의 결혼 생활은 결국 최도경의 첫사랑이 돌아오면서 끝나버렸다... 빠앙! 그 순간 하예원의 귓가로 시끄러운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후였고 차는 그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하예원은 그렇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한 달 후, VIP 병동에서. 그날 응급 수술에 성공한 하예원은 지금 SNS에 일기처럼 올렸던 게시글을 읽고 있었다. 이때 병실의 문이 열렸다. 하예원은 핸드폰을 옆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서연아, 왔어? 오늘도 맛있는 거 가져온...” 하예원은 말을 마치지 못한 채 멍하니 앞을 보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신을 원망할 정도로 잘생긴 남자였다. 남자의 이목구비는 또렷했고 칠흑 같은 눈동자는 밤하늘의 뜬 달처럼 그윽하고 차가웠다. 게다가 맞춤 제작한 정장을 입고 있어 유난히도 몸매가 좋아 보였고 키는 어림잡아 190㎝는 되는 것 같았다.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을 뿐인데 어딘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흘렀다. 지금 이 순간 남자는 하예원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눈빛은 아주 담담했지만 꼭 그 담담한 눈빛 뒤에 서늘한 칼을 숨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등골이 서늘해지게 했다. 하예원은 그런 남자를 꼼꼼하게 훑어보며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남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다소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알 수 없는 조롱이 담겼다. “무슨 짓을 꾸미든 신경 안 쓰는데 그렇다고 목숨까지 바치지는 마. 그건 멍청한 짓이니까. 이건 이혼 서류야. 너만 사인하면 돼.” 말을 마침 남자는 서류를 하예원의 침대로 던진 후 가버렸다. 하예원은 그제야 남자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남자는 바로 그녀가 한 달 동안 입원했는데도 얼굴 한번 비추지 않은 쓰레기 남편, 최도경이었다. 남자의 뒷모습을 보던 하예원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나 기억 잃었어.” 최도경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어딘가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하예원을 보았다. “하예원 씨, 또 기억 잃었어?” ‘또라니... 설마 전에도 내가 기억을 잃었었나?' 하예원이 입을 열기도 전에 최도경은 싸늘하게 말했다. “아픈 척, 기억 잃은 척, 교통사고 당한 척... 하예원, 네가 할 줄 아는 게 이런 것밖에 없는 거냐?” 그동안 하예원은 개인비서인 노서연에게서 자신이 예전에 했던 일에 관해 들은 바 있었다. 그랬으니 최도경을 붙잡기 위해 저질렀던 어리석은 짓들도 전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 자신을 경멸하며 비웃는 최도경을 보니 하예원은 이상하게도 화가 치밀었다. 예전에 이런 쓰레기 같은 사람을 사랑했다는 것이 너무도 어처구니없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거야.” 하예원은 아주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이번도 당신을 붙잡기 위해 연기하는 건 아니니까. 퇴원하고 나면 바로 이혼해줄게.” 순간 최도경이 눈이 커졌다. 꼭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눈빛으로 돌아왔고 다시 눈앞에 있는 하예원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하예원은 아주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목구비도 또렷한 황금비율이었으며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깔끔했다. 아무리 지금 안색이 다소 창백해도 하예원의 미모는 여전했다. 최도경은 그런 하예원을 보며 조금은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남자의 시선에 하예원은 순간 이상하게도 심장이 조여왔다. 비록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그녀의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꼭...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서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기억을 잃긴 했으나 핸드폰에서 자주 그의 모습을 보았고 거기에다 노서연이 알려준 것을 결합해 보면 대충 짐작이 갔다. 최도경에게는 오랜 여자 사람 친구가 있었다. 거의 결혼까지 할 뻔한 첫사랑이었으나 그녀가 두 사람 사이에 억지로 끼어들면서 최씨 가문 며느리가 된 것이었다. 그동안 최도경은 하루가 멀다 하게 그녀와 이혼 얘기를 꺼냈고 그녀는 갖은 수단을 쓰면서 최도경과 이혼하지 않으려 애썼다. 인터넷에서는 최도경이 다른 여자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기사가 가득했다. 일부는 그녀가 파티에서 최도경과 함께 온 파트너를 쫓아내기 바빴다는 기사이기도 했다. 하예원은 비열한 수단으로 최도경을 얻고 명실상부한 재벌가 며느리가 된 것이었다. 심지어 핸드폰을 보던 중 최도경이 자신의 생일날 최도경이 이혼하자고 보낸 문자와 다른 여자와 오붓한 시간을 보낸 기사도 보게 되었다. 어쩌면 자신이 충격을 받아 갑작스럽게 외출하면서 생일날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측했다.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남편은 드디어 찾아왔건마는 목적은 이혼이었다. 정말이지 너무도 아이러니했다. 자신의 앞에 우뚝 서 있는 최도경을 보며 하예원은 차갑게 말했다. “그래. 이혼하자.” 그 말을 들은 최도경의 눈빛은 바람에 일렁이는 호수처럼 살짝 흔들리다가 빠르게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하예원을 보면서 마치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있는 듯했다. 한참 지나서야 최도경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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