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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언제 할 건데?” 멈칫하던 하예원은 최도경의 의미를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퇴원하고 나서 할게.” “그래.” 말을 마친 최도경은 차갑게 돌아서며 미련 없이 떠나버렸다. 하예원의 몸 상태가 어떤지, 왜 입원을 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꼭 하예원이 아내가 아닌 것처럼,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 또 한 달이 지나고 하예원은 퇴원했다. 아침부터 노서연은 하예원의 병실로 찾아와 퇴원을 돕고 있었다. “예원 언니, 퇴원 축하해요. 오늘은 제가 한턱 살게요.” 헤실헤실 웃는 노서연의 얼굴을 보니 하예원은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듯 따라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내가 사야 하는걸.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와 날 챙겨줬잖아.” 그러자 노서연은 정색하며 말했다. “언니, 나한테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요. 언니는 내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만약 언니가 그때 구해주지 않았다면 난 어디로 팔려갔는지로 몰랐을 거예요.” 3년 전 노서연은 부모님이 정해준 결혼 상대에 불만을 품고 집을 나왔다. 그러나 그때의 노서연은 사회초년생이었고 집안에서 사랑받으며 자랐던지라 집을 나온 첫날에 몸에 지닌 모든 재산을 도둑맞게 되었다. 그러고 난 후에 하마터면 어디론가 팔려갈 뻔했다. 다행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하예원이 노서연을 구해준 것이었다.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하예원은 거처를 마련해주고 개인비서로 일하게 해주었다. 그랬기에 노서연은 하예원을 은인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하예원은 무언가 떠올라 노서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연아, 한 달 동안 너를 제외한 아무도 날 보러온 사람이 없었어. 혹시 나한테 가족이나 친구 없는 거야?” 노서연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얼버무렸다. “아마... 다들 언니가 사고당한 걸 모르고 있지 않을까요? 언니는 결혼한 뒤에 가족들이랑 연락 자주 안 하고 지냈었거든요.” 그 말에 하예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 하늘에 어둠이 드리워지고 하예원은 침대에 기대어 책을 읽었다. 달칵. 이때 안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한 밤이라서 그런지 유난히도 크게 들려왔다. 아무리 별장의 풍경이 아름답고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나서서 지은 것이라고 해도 기억을 잃은 하예원은 여전히 조금 불안했다. 이윽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문 쪽을 빤히 보았다.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가 천천히 들어오자 하예원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 여긴 왜 왔어?” 경계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하예원의 모습에 최도경은 다정함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픽 웃었다. “하예원, 지금... 나랑 밀당하는 거냐?”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도 차가웠다. 분명 듣기에 기분 좋은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는 불쾌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밀당?” 하예원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 결국 웃어버리고 말았다. “최도경 씨, 난 모든 걸 다 잊었어. 당신을 향한 내 마음도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근데 왜 아직도 내가 예전처럼 당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게다가 이혼을 앞두고 있는데 내가 굳이 밀당을 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안 그래?” 최도경은 눈을 가늘게 접었다. 짙게 가라앉은 눈빛이 심기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빛에 하예원은 손끝을 살짝 움츠렸다. 최도경의 눈빛이 너무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최도경은 무언가 심문하는 듯한 눈빛으로 하예원을 보고 있었다. “당연히 네가 예전처럼 연기하는 건가 확인하고 있는 거야.” 하예원은 최도경의 조롱에 신경 쓰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에 돌아온 이유가 나한테 이혼을 통보하려고?” 최도경은 하예원을 몇 초간 빤히 보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내일은 할아버지 생신이야.” “그래서?” “아직 이혼 안 했고 넌 여전히 최씨 가문 며느리니까 꼭 참석해.” 하예원은 오늘 막 퇴원한 참이었다. 그런데 내일이 최성철의 생일이라고 하니 이혼은 다른 날로 미뤄야 할 것이 분명했다. 여하간에 하예원은 이 집에서 몸만 나갈 생각이 없었던지라 위자료 재산 분할에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물었다. “내가 기억을 잃은 거, 할아버지도 알고 계셔?” “모르셔.” “...” 몇 초간 정적이 흐르고 난 후에야 하예원이 말했다. “내일 생신인데 내가 못 알아보면 어떡해?” 최도경은 아주 차갑게 대답했다.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말을 마친 후 더는 하예원과 말을 섞기 싫었는지 욕실로 향했다. 20여 분 후 남자는 욕실에서 나왔고 걸으면서 마른 수건으로 머리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 최도경은 샤워 가운을 입지 않고 그저 간단히 샤워 타올로 하반신만 두르고 있었다. 마르지 않은 물기가 피부를 타고 흘러내렸다. 최도경의 몸매는 모델 뺨치는 몸매였고 피부도 매끈했다. 근육도 탄탄해 저도 모르게 복근으로 시선이 갔다. 이런 최도경의 모습은 하예원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고 멍하니 보았다. 만약 하예원의 시선이 뜨겁지만 않았어도 물기를 닦던 최도경이 고개를 돌려 하예원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몇 초 뒤에야 최도경은 입을 열었다. “구경 다 했나?” 정신이 번쩍 든 하예원은 일부러 태연하게 시선을 돌렸다. 최도경의 시선이 조금 불그레해진 하예원의 볼로 향했고 차갑게 입꼬리를 올려 비웃었다. “아닌 척 연기 그만하지? 남자 몸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면서 얼굴까지 붉히다니. 대체 누굴 보여주려고 그딴 연기를 하는 거야?” “...” 최도경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전부 하예원의 인내심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하, 정말로 아직도 자기를 졸졸 따라다니고 자존심도 없는 하예원으로 아는 거야?' ‘자아도취도 정도껏 해야지. 선을 넘으면 그것도 병이야.' 하예원은 침대에서 내려와 최도경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눈을 깜빡이며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당신 말고 누가 있겠어? 그러니... 당연히 당신 보라고 얼굴을 붉히고 있는 거잖아.' ‘나 싫어하지? 그럼 오늘 더 역겹게 만들어 주겠어!' 이렇게 생각한 하예원은 일부러 걸음을 옮겨 최도경과 거리를 줄였다. 곧이어 발꿈치를 들더니 야릇하게 최도경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이 그랬잖아. 내가 당신의 관심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 꾸몄다고. 근데... 내가 이런 방법은 해본 적 없었어? 여보.” 곧이어 하예원의 허리로 팔이 확 감겨왔다. 몸이 허공에 들리며 최도경의 품에 안기게 된 하예원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하예원은 이미 침대에 던져진 뒤였다. 동시에 남자의 커다란 몸이 하예원을 향해 바싹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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