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놀란 하예원은 눈빛이 흔들렸다.
“최도경, 지금 뭐 하는 거야?”
최도경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하예원을 보았다.
“뭐하긴? 허, 하예원. 지금 알면서 묻는 거야?”
“...”
‘아, 그렇네. 지금 이런 말을 꺼내면 알면서 묻는 거라고 오해할 수 있겠네.'
하예원은 최도경의 단단한 가슴에 손을 올리고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최도경을 보았다. 최도경이 이렇게 나올 줄은 전혀 몰랐기에 다소 당황하고 말았다.
“최도경, 그렇게 싫어하던 사람이랑, 곧 이혼을 앞둔 사람이랑... 뭘 하려는 거야?”
최도경은 입꼬리를 올리며 픽 웃었다. 그러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았고 오히려 싸늘하기만 했다.
“하예원, 너 설마... 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녀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서로의 속눈썹의 길이가 어떤지, 숨소리가 어떤지 전부 알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은은한 불빛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눈빛은 불빛처럼 은은하지 못했다. 최도경은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예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면, 우리가 결혼한 지 3년이 되었는데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고 생각했나?”
최도경은 고개를 숙여 점점 더 하예원에게 다가갔다. 하예원은 숨을 꾹 참아버렸다. 최도경의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하는 순간... 최도경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하예원은 멍하니 최도경을 보았다. 그러자 최도경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예원, 내가 정말로 너한테 관심이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거 아니지?”
말을 마친 최도경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막 방을 나서려던 순간 무언가 떠오른 것인지 걸음을 멈추었다.
“참, 이걸 안 알려줬네. 3년 동안 네가 계속 들이댔어. 심지어...”
최도경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내가 다른 방에서 잠을 잘 수 없게 외출한 틈을 타 이 집 안에 있는 다른 방의 침대를 전부 치워버렸지.”
그 말을 들은 하 예원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예전의 내가 그런 짓까지 했다고?'
최도경은 더는 하예원을 상대해주지 않고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흐르는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최도경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하예원은 이미 잠든 후였다.
깊이 잠든 하예원의 얼굴을 보며 최도경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 속에는 복잡함이 담겨 있었다.
‘역시 기억을 잃기 전이랑 다른 게 하나도 없잖아. 자존심도 없고 여전히 악랄해.'
...
저녁 8시에 하예원은 노서연과 연회장 입구에 도착했다. 연회 홀의 불빛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손님들은 비싼 옷을 몸에 걸친 채 우아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예원이 연회장으로 들어서자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입을 다물고 저마다 괴이한 눈빛으로 하예원을 보았다.
놀란 듯한 사람도 있었고 비웃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원망의 눈길로 하예원을 보고 있었다.
하예원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고 목소리를 한껏 낮춰 노서연에게 물었다.
“서연아, 저 사람들은 왜 저런 이상한 눈으로 날 보는 거야?”
노서연은 고개를 저었다.
“언니, 전 언니랑 이런 연회장에 함께 와 본 적 없어요. 그래서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 예전에 언니가 연회장에서 윤희설 씨랑 싸운 적이 있었거든요. 그 일이 기사화되기도 했고... 또 어느 한번은 언니가 실수로 수영장에 빠져서 저한테 옷 가져다 달라고 연락하신 적이 있었어요. 제가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라 구체적인 건 몰라요. 평소의 언니는 저한테 일상을 공유하지 않았거든요.”
노서연을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수영장에 빠졌을 때 누군가 언니를 밀었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때 언니를 믿어주는 사람도 없었고 증거도 없어서...”
“어떻게 됐는데?”
“그래서... 그 일은 그냥 흐지부지 넘어갔어요.”
“최도경은? 걔는 안 나서준 거야?”
노서연은 에둘러 말했다.
“그때 언니를 수영장으로 밀어버린 사람은 윤희설 사촌 동생이거든요...”
그 말을 들은 하예원은 바로 눈치챘다.
“하, 그럼 첫사랑을 감싸고 있었겠네.”
말을 마친 순간 입구 쪽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키가 큰 남자가 젊고 아름다운 미모의 여자가 천천히 들어왔다. 여자의 이목구비는 신이 빚은 듯 완벽했고 눈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여자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도 아름다워 보였다. 긴 머리를 단정하게 땋으니 하얀 목선이 드러났고 드레스와 어울리는 흑진주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 목걸이는 화려한 불빛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여자의 옆에 선 남자는 검은색 맞춤 정장을 입은 채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었다. 남자의 모습은 꼭 만화를 찢고 나왔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생겼다. 게다가 기품도 남달랐고 어딘가 범접할 수 없는 강대한 아우라도 느껴졌다. 이렇듯 아름답고 잘생긴 사람이 등장하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일부 사람들은 작게 수군대기 시작했다.
“최도경 씨와 윤희설 씨는 참 선남선녀라니까요...”
“그러게요. 만약 하예원이 비열한 수단으로 결혼한 거 아니었다면 최도경 씨와 윤희설 씨는 이미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도 남았을 거예요.”
“그러니까요. 하예원이 그동안 창피한 짓을 얼마나 많이 하고 다녔는데요. 최씨 가문 며느리 자리에 올라앉아서 다른 여자들이 접근 못 하게 하고 또 이혼도 안 해주겠다고 버티고 있었잖아요... 쯧, 어쩌다 저런 여자한테 걸려서는...”
“쉿, 작게 말해요. 저기 하예원이 있어요. 아까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라고요.”
“우리가 두려워할 게 뭐가 있어요? 하씨 가문은 이미 망했고 더는 예전의 재벌가 아가씨가 아니잖아요. 최도경이라는 든든한 남편을 뒀다고 해도 그건 남편한테 사랑받았을 때나 든든하겠죠. 남편한테 미움만 받는 사람이 뭘 믿고 당당할 수 있겠어요?”
수군대는 소리는 하예원의 귀에 전부 들려왔다. 노서연도 듣고서는 행여나 하예원의 기분 나빠할까 봐 서둘러 달래주었다.
“언니,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는 무시해요.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면서 떠드는 소리잖아요. 언니랑 최도경 씨 사이가 안 좋으면 어떻게 함께 3년 동안이나 살았겠어요. 안 그래요? 그리고 그렇게 언니가 미웠다면 결혼은 왜 했겠어요?”
노서연은 하예원과 함께 일하고 있긴 했지만 둘 사이의 일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사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진짜인지도 몰랐다. 하예원이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그 순간 누군가 비아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예원, 그만 뻔뻔해지면 안 되나? 어떤 방법으로 도경 오빠와 결혼한 건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다 알고 있잖아. 안 그래? 만약 희설이가 요양차 해외로 떠나지 않았다면 네가 최씨 가문 며느리 자리에 그렇게 오래 앉을 수 있었을 것 같아? 남의 자리를 훔친 주제에. 어쨌든 자리의 주인이 돌아왔으니까 눈치껏 꺼져. 괜히 나중에 창피하게 버림받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