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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그렇다면 심씨 가문 체면을 봐서 그렇게 합시다.” 최도경의 대답을 들은 순간, 심가영과 심준하는 물론 하예원마저 놀라움에 말문이 막혔다. 사실 다들 최도경이 계단에서 내려오며 했던 그 말은 그냥 겁주는 소리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무심하게 내뱉은 말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시원하게 대답한 최도경은 이미 계단 아래로 내려와 하예원 곁으로 다가가 담담하게 물었다. “더 요구할 게 있어?” 상대 손을 부러뜨리는 벌까지 내려졌는데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하예원은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 “없어.” 최도경은 시선을 돌리며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쪽에서 기르는 그 개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준하가 재빨리 나섰다. “최도경 씨가 원하는 대로 처분하셔도 됩니다.” 최도경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다. “심가영 씨가 그 개의 주인인데 남의 손에 맡기는 건 말이 안 되죠.” 눈치 빠른 심준하는 그 말에 담긴 뜻을 단번에 알아채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이따가 심가영에게 시켜 그 개를 직접 때려죽이게 하겠습니다.” 사실 어제 최도경은 이미 사람을 보내 그 개를 데려갔다. 데려간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처분하려는 것이었다. 개 하나쯤이야 뭐 대수라고 심민재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최도경은 심가영에게 그 개를 직접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손을 부러뜨리게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개까지 자기 손으로 죽이라고 하자 심민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최도경 씨, 그 개가 잘못한 건 맞습니다. 그러니 최도경 씨가 어떻게 하시든 우리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어요. 하지만 심가영은 그 개를 몇 년이나 키웠습니다. 그런데 자기 손으로 죽이라는 건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요?” 최도경은 긴 속눈썹을 가볍게 들며 아무렇지 않게 대응했다. “자식을 잘못 가르친 건 아비의 책임이 아닌가요? 심민재 씨가 잔인하다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왜 자기 개 하나 제대로 못 가르쳐서 남을 물게 했죠?” 순간 심민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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