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서은수는 자신이 갈 곳이 위험하다는 것을 고려해 할머니의 시신을 안장하기로 했다.
그녀는 유골 목걸이를 사서 할머니의 머리카락과 약간의 유골을 넣고 나머지는 묘지에 안장했다.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가슴에 찬 목걸이를 꼭 쥐었다.
“할머니, 걱정 마세요. 이제 곧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러 갈 거예요. 몸 건강히 잘 다녀올게요.”
서은수가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집 안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웃음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온몸이 굳어버린 순간, 구도운이 그녀를 발견했다.
그는 재빨리 서은수에게 다가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은수 왔네. 빨리 들어가자. 친구 두 명 소개해 줄게.”
소파에 앉아 있던 남녀가 일어서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조롱하는 듯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다름 아닌 강승아와 구도영이었다.
서은수는 통제할 수 없이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것은 강승아를 마주할 때 나타나는 생리적인 반응이었다.
구도운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승아는 어릴 때부터 나랑 함께 자란 소꿉친구고 도영이는 내 쌍둥이 동생이야. 둘 다 외국에서 유학 마치고 막 돌아왔는데 마침 우리 결혼식에 참석하게 됐어.”
강승아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살갑게 웃었다.
“나 은수 씨 알아. 우리 대학교 룸메였잖아.”
그렇게 말하며 강승아는 서은수의 팔짱을 끼고 귓가에 속삭였다.
“그렇지, 은수야?”
수많은 장면들이 서은수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강승아는 그녀를 괴롭히고 난 후 매번 귓가에 속삭였다.
“그냥 룸메끼리 장난이었잖아. 그렇지, 은수야?”
그녀는 조건반사적으로 소스라치게 놀라며 강승아를 밀쳐냈다.
강승아는 바닥에 주저앉아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은수야, 아직도 내가 싫어? 난 그저 너랑 잘 지내고 싶을 뿐인데.”
두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구도운은 재빨리 강승아에게 달려가 일으켜 세우며 싸늘한 눈빛으로 돌변했다.
구도영은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형 약혼녀 성격이 꽤 드세네. 아직 구씨 집안 며느리도 안 됐는데 벌써 저렇게 거만하면 어쩌자는 거야?”
구도운은 강승아를 뒤로 감싸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차갑게 쏘아붙였다.
“서은수, 사과해!”
서은수는 눈앞의 세 사람을 번갈아 보며 양옆에 늘어뜨린 손을 조용히 움켜쥐었다.
어젯밤 들었던 말들이 떠오르자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아려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하지만 두 걸음도 채 나아가지 못하고 손목이 덥석 잡힌 채 엄청난 힘에 끌려서 걸음을 휘청거렸다.
서은수는 고개를 들어 분노로 이글거리는 구도운의 눈을 마주했다.
“누가 네 맘대로 가래?”
구도영이 옆에서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구씨 가문은 명문가라 예절을 중요시하잖아. 형 약혼녀는 제대로 길들여질 필요가 있어.”
“맞아.”
구도운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은수야, 넌 곧 우리 집안 며느리가 될 몸이니 언행을 조심하고 항상 본인 행동을 단속해야 해. 오늘 일은 제대로 반성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강제로 그녀를 끌고 지하로 내려가 그곳에 있는 어느 한 방에 밀어 넣었다.
서은수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빈틈 하나 없이 완벽하게 닫힌 문에서는 한 줄기 빛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서은수는 그제야 이곳이 창문 하나 없는 좁고 어두컴컴한 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녀는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려 문을 두드리고 아무리 소리쳐도 문밖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휩싸였다.
대학교 시절, 강승아가 그녀를 사흘 동안 좁고 어두컴컴한 방에 가둬둔 적이 있었다. 소리도 빛도 없는 곳에서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그때 서은수는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렸고 그 후로 어둠을 극도로 두려워하며 폐소공포증까지 앓게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매일 밤 모든 불을 켜야만 했고 잠을 잘 때도 예외는 없었다.
구도운은 처음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안타까운 마음에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괜찮아, 다 나아질 거야. 앞으로 우리 집에서는 항상 불을 켜고 잘 테니까 무서워하지 마.”
처음에 구도운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며 쉽게 깨곤 했다.
하지만 서은수가 불을 끄는 것을 시도하려고 할 때마다 그는 거절하며 말했다.
“은수야, 넌 억지로 뭔가를 할 필요 없어. 내가 적응하면 돼.”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서은수가 강승아를 밀쳤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식으로 벌하려 하다니.
심장이 저리고 아파왔다. 서은수는 구석에 웅크려 앉아 떨고 있는 자신을 힘껏 껴안았다.
‘그래, 과거의 따뜻함은 처음부터 가짜였어. 그들이 일부러 연기했던 거야.’
심지어 이 좁고 어두컴컴한 방조차도 그녀를 위해 맞춤 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