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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이 남자와 잤어

그는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 문지원은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했다. 여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대답 안 해?” 굴욕감이 몰려왔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결국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난 18살에 이미 순정을 잃었어. 항상 처음이 아니라고 했던 것도 이 남자랑 잤기 때문이지.” 심무영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뭐?” “이제 만족해요?” 문지원의 목소리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아저씨, 무영 씨는 이만 보내줘요.” 어깨가 축 처진 채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비로소 한시름 놓았다. 비록 심무영은 살아남았지만 재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분명 비서와 함께 회사를 둘러보기로 했는데 대표실에 도착하자마자 여진우에게 붙잡혀 책상 위에 앉게 되었다. 체급 차이 때문에 발버둥 쳐봤자 무용지물이었다.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찰나 도마 위에 오른 물고기처럼 팔딱거리며 마지막 발악을 했다. 현재로서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했다. “아저씨...?”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은 커다란 손이 코 밑까지 올라왔다. 이는 문지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기분에 따라 야릇한 농담도 했지만 입술을 꾹 닫고 거친 본성을 드러낼 때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 자주 아프다 보면 감각도 무뎌진다? 다 거짓말이었다. 극심한 통증에 그녀는 얼굴마저 하얗게 질렸다. 살아야겠다는 본능에 온몸으로 저행했지만 여진우에게 붙잡혀 옴짝달싹 못 했다. 의식이 흐릿한 가운데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가 들리자 급히 손을 뻗어 그를 밀쳤다. “안 돼요, 저 아기 낳기 싫어요! 아저씨, 딱 3년만 지속하기로 약속했잖아요.” 여진우는 이를 악문 채 침묵했다. 물론 그녀를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그때는 아직 어리고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애송이한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마음에 늘 조심하며 피임도 철저히 했다. 정작 도망칠 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해외에서 성가신 일을 처리하느라 발목이 묶인 틈을 타서 현금만 남겨두고 자취를 감추었다. “내 허락 없이 그 자식한테 전화하지 마.” 욕구를 해결하자 여진우는 그녀를 놓아주고 몸을 일으켜 사무실 안쪽 욕실로 들어갔다. 문지원은 한참 동안 골골거렸다. 아랫배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결국 어린 시절의 충동적인 선택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었다. 그와 입을 맞추던 순간 머릿속으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차라리 그때 여진우를 찾아가지 않고 해외에 팔려 갔다면 오히려 도망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아저씨.” 여진우의 뒷모습이 멈칫했다. “왜?” “제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아요?” 사실 오빠라고 해도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그는 외모도 잘생기고 이목구비도 뚜렷했다. 미간은 늘 찌푸린 상태였고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 살기가 서려 있다. “뭔데?” 문지원은 텅 빈 눈으로 책상에서 내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축축한 땀에 온몸이 끈적거려 몹시 불쾌했다. “당신 앞에 무릎 꿇고 이마가 터지라 빌던 아빠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죠. 형님이라고 하면서 며칠만 더 봐달라고 애원하기도 했죠.” “그래서?” “아빠가 형님이라 부르는데 딸로서 아저씨라고 하는 게 맞지 않겠어요?” 여진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는 속셈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소정아, 애먼 생각하지 마.” “네.” 그는 욕실에 한쪽 발만 들인 채 앞만 보고 말했다. “다음엔 살살할게.” 애착 인형을 너무 빨리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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