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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빛을 보지 못하다

샤워를 마친 여진우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아랫배를 끌어안고 고통스러운 듯 안색이 창백한 문지원을 발견했다. 조금 전, 오직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혀 강약 조절에 실패한 자신이 떠올랐다. 마치 그녀를 거칠게 다뤄야만 완전히 소유하고, 자신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아무도 넘보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틈만 나면 심무영을 걱정하고 챙겨주는 게 괘씸해서 더 했다. 정작 자신은 괴물 취급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이성의 끈을 놓았다. “의사 부를게.” “싫어요.” 문지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거절했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의사 부르던가, 아니면 나랑 병원 같이 가던가.” 둘 중 하나,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애써 몸을 일으켰다. “병원에 가요.” 의사를 부르면 여원 그룹에 상주하는 홈닥터가 올 것이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공개 발표하는 셈인데 앞으로 무슨 얼굴로 회사에 출근한단 말인가! 3년 동안은 열심히 일하기로 그와 약속했었다. 더욱이 병원에 가면 눈치를 봐서 약을 살 수도 있다. 방금 피임하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지금 가임기였다. 비록 딱 한 번에 불과하지만 리스크를 감수하기 싫었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올해 25살, 설령 여진우 곁에 3년을 머문다고 해도 28살이다. 앞으로 적어도 50년은 더 살 수 있기에 그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해도 가능한 나이였다. 하지만 아이를 갖게 된다면 평생 발목을 묶이게 되며 하루하루 빛을 보지 못한 채 연명해야 할 것이다. ... 병원은 특유의 소독약 냄새로 가득해 기분이 언짢았다. 여진우가 등장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그의 품에 안긴 문지원은 괜스레 부담스러워 가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귓가에 규칙적인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진료실에 들어섰다. 흰색 가운을 입은 여자 의사가 검사를 마치고 엄한 표정으로 꾸중했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적당히 하셔야죠. 살이 찢어진 게 말이 돼요? 워낙 연약한 부위라 조심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늦었어요.” 문지원은 의사의 잔소리에 민망한 나머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반면, 의자에 앉은 여진우는 태연한 모습으로 되물었다. “자꾸 아파하는데 해결 방법이 있을까요?” 진료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다행히 의사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듯 표정을 다잡고 말을 이었다. “윤활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로션 좀 써보세요. 아무튼 지금처럼 하면 절대 안 돼요.” “네.” 여진우는 짧게 대답했고, 의사의 말을 제대로 듣기나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약 처방해드릴 테니까 댁에 가서 발라요. 그럼 상처가 빨리 아물 거예요.” 의사가 말을 마치자 문지원이 고개를 돌려 여진우를 바라보았다. “잠깐 나가주실래요? 선생님이랑 따로 상담받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요.” 혹시라도 거절당하면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어. 담배 피우고 올게.” 듬직한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문지원은 간절한 눈빛으로 의사를 바라보았다. “혹시 연고 말고 피임약도 처방해주시면 안 될까요?” 의사는 어리둥절했다. “피임약은 약국에도 팔아요.” “알아요. 하지만 시간이 없어요. 지금 당장 먹어야 해서 얼른 처방해주세요.” “얼마나 드릴까요?” “3개월 치요.” 당분간은 충분할 것이다. 나중에는 스스로 구할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워낙 바쁜 사람이라 일일이 감시하며 쫓아다닐 수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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