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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윤채원 씨.” 배유현은 눈앞의 여자를 바라봤다. 맑고 부드러운 얼굴에는 자조가 가득했고 그녀가 기분이 상했다는 걸 그는 바로 알아챘다. 그가 지금까지 만나온 여자들은 많지 않았다. 배유진은 털털했고 성다희는 말이 적고 순종적인 편이었다. 하지만 윤채원은 지금, 낯설 만큼 날카로웠다. 아마 자신이 전 여자 친구의 이름을 부른 걸 듣고 기분이 상한 듯했다. 그는 감정을 억누르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 화제를 더 이상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윤채원 씨, 우리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요?” 배유현은 지금 이 순간, 윤채원이 전 여자 친구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치 자신이 진도준의 이름을 듣고 싶지 않은 것처럼. 그는 어젯밤, 술에 취한 채 그녀를 안고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른 일이 얼마나 불쾌했을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윤채원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우유 팩을 세게 누르며 말을 이어갔다. “왜 그 여자 얘기를 두려워하세요? 그 여자에 대해 말하는 게 그렇게 부끄럽고 굴욕적인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배유현 씨, 그 여자를 좋아한 적은 있으세요? 아주 조금이라도.” “윤채원 씨!” 이번에는 배유현의 목소리가 단단하게 높아졌다. “제 말이 맞아서 화내시는 거죠?” “화냈다고요?” 그는 코웃음을 치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제 전 여자 친구 얘기가 듣고 싶으세요? 좋아요. 그럼 뭘 더 듣고 싶은지 말해 보세요. 함께 지냈던 사소한 일들까지 다 말해드릴까요? 우리가 어떻게 잤는지, 밤엔 어떤 자세로, 하룻밤에 콘돔을 몇 개 썼는지, 소파에서 욕실까지 어떻게 갔는지... 전부 다 말해줄까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억눌린 목소리로 내뱉었다. 가슴이 떨렸고 억제할 수 없는 격렬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저는 윤채원 씨와 진도준 씨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어요. 그럼 저도 윤채원 씨에게 과거 연애에 관해 물어봐야 겠네요? 우리는 서로의 과거를 존중해야 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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