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3화

저녁 10시. 윤채원은 침대에 누운 후 고등학교 때 자주 사용했던 채팅 어플에 들어갔다. 계정에 로그인하자마자 노진수가 보내온 메시지가 보였다. [다희야, 우리 다음 주에 미로업에 동창회 할 건데 너도 와. 구체적인 날짜랑 시간은 단톡방에 공지해 둘게.] [다희야, 혹시 요즘 힘들어? 그런 거면 나한테 얘기해줘.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 우린 친구잖아.] 반장이라 그런지 친구들 챙기는 건 여전했다. 단톡방으로 들어가 보니 친구들이 안부를 건네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윤채원은 단톡방을 이만 나가고 싶었지만 지금 나갔다가는 반장이 또다시 말을 보내올 것 같았다. 윤채원은 친구들이 주고받은 내용을 한번 훑어보았다. 예상대로 그녀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당연했다. 그때의 그녀는 여학생 중에서 제일 뚱뚱했으니까.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못생기거나 뚱뚱한 건 늘 배척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반 친구들은 윤채원이 단지 곁을 지나가기만 했을 뿐인데도 뚱뚱하다느니, 돼지 같다느니 하는 막말을 뱉어냈다. 사실 윤채원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마른 편이었지만 호르몬 약을 다량으로 먹게 된 후로 급격히 살이 찌기 시작했다. 단톡방에서 제일 많이 거론되는 이름은 당연하게도 배유현이었다. 배유현은 늘 이렇게 어디로 가든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다.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를 갖고 있는 윤채원과 달리 그의 수식어에는 좋은 단어들밖에 없었다. 윤채원은 배유현의 프로필 사진을 눌러보았다. 그 역시 어플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 건지 옛날 사진 그대로였다. ... 눈 깜빡할 사이에 토요일이 다가왔다. 윤채원은 일주일 내내 도시연의 요구대로 디자인을 수정해 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브랜드 쪽 책임자는 두 개의 디자인 중 첫 번째 디자인을 선택했으며 바로 계약까지 체결했다. 두 번째 디자인이 반려된 것에 도시연은 상당히 언짢아했지만 대표가 와 팀 전체에 칭찬을 건네며 회식까지 잡아버리는 바람에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회식 장소는 [미로업]이라는 맥줏집이었다. 윤채원은 맥줏집 이름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금방 착각이겠지 하며 회식 장소로 향했다. 저녁 7시. 룸 안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윤채원도 직원들을 따라 두어 잔 술을 따라 마셨다. 그 시각, 바로 옆 룸에서는 청송 고등학교 동창회가 열리고 있었다. 친구들은 늦게 도착한 배유현을 보더니 왜 이렇게 늦었냐며 다짜고짜 술부터 건넸다. 이에 배유현은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며 딱 잘라 거절했다. 워낙 차가운 성격이었기에 친구들은 무안해하는 법도 없이 금방 알겠다며 자기들끼리 술을 마셨다. 여자 동창들은 배유현의 곁으로 차마 다가가지는 못하고 멀리서나마 사진을 몰래 찍었다. 배유현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여자들의 흠모 대상이었다. 얼굴도 잘생겼고 공부도 잘하며 거기에 집안까지 좋았으니까. “유현이 너는 여자 친구 있어?” 그때 반에서 제일 예뻤던 여자 동창이 다가와 배유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콜이 오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여자 친구랑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어?” 배유현이 휴대폰을 매만지며 답했다. “하긴. 특히 흉부외과는 더 바쁘다고 들었어.” 신정연이 배유현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눈빛을 주고받더니 오버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배유현은 그들이 그러든 말든 여전히 아무런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는 신정연이라는 애가 같은 반이었던 것도 까먹고 있었다. 배유현은 룸 안을 둘러보다 일인 소파 쪽으로 가서 앉았다. 몇 시간 전, 꼭 응해야만 했던 인터뷰가 있었기에 그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포멀한 옷차림이었다. 그래서인지 소파에 앉아 그저 미간을 주무르는데도 꼭 화보 같았다. 신정연은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듯한 그의 행동에 조금 실망한 듯 조용히 술을 들이켰다. “유현아, 여기 물.” 노진수가 다가와 배유현에게 물을 건넸다. “고맙다.” “고맙기는.” 노진수는 미소를 지으며 배유현과 가벼운 얘기를 나눴다. 그의 집안도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기에 배유현과는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싶었다. 아무리 배유현이 회사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여도 그가 배씨 가문의 도련님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으니까. 게다가 배씨 가문의 첫째인 배도겸이 입양아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즉, 다들 중요한 순간에는 친아들인 배유현의 입김이 더 세게 작용할 거라고 생각했다. 동창회에 늦은 건 배유현뿐만이 아니었고 아직 안 온 친구들이 많았다. 문이 열릴 때마다 배유현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자꾸 문 쪽으로 시선이 갔다. 문을 열고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은 정수진이었다. 노진수는 정수진을 보자마자 술을 권했고 이에 정수진은 기분 좋게 두잔 연거푸 마셨다. “정수진, 몇 년 안 본 사이에 살이 좀 찐 것 같다?” 누군가가 웃으며 물었다. “수진이 예전에 엄청 말랐었는데 대체 언제부터 살이 찌기 시작한 거야?” 살이 찐 것 같다는 말에 배유현이 고개를 들어 정수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찰나였지만 그의 눈가에 실망이라는 감정이 깃들었다. 괜스레 가슴이 답답해진 배유현은 내일 출근해야 하는 것도 잊은 건지 조용히 술을 따라 마셨다. 한잔, 두잔, 마치 고삐가 풀린 듯 손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어딘가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또 차가워 보이기도 해 누구 한 명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건네지 못했다. 그때 용기를 낸 신정연이 술잔을 들고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유현아, 우리 외삼촌이 요즘 심장이 조금 뻐근하다고 해서 그러는데 네가 좀 봐줄 수 있을까? 다음 주에 병원으로 갈게.” “다음 주는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어서 힘들 것 같은데. 장이영이라고 실력 좋은 선생님 한 명 있으니까 그 선생님한테 가봐.” “아... 알겠어.” 신정연은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배유현의 대답이 지나치게 퉁명스러워 다시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분위기가 슬슬 무르익어 가는 것을 본 노진수는 이때다 싶어 마이크를 집어 들고는 준비한 선물이 있다며 친구들에게 건넸다. 그가 건넨 선물은 그의 아버지 회사에서 제작한 가구와 찻잔 세트였다. “너희들 중에 성다희랑 연락되는 애 없어? 택배로라도 보내고 싶은데.” 배유현은 관심 없는 듯 술만 계속 들이켜다가 성다희라는 이름에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한순간에 맑아지는 것 같았다. “성다희라면 그 뚱땡이? 계주 때 땀 뻘뻘 흘리면서 달렸던 그 여자애 말하는 거 맞지? 하하하, 내가 그때 얼마나 웃었는...” 변찬수는 신이 나서 떠들어대다가 배유현과 눈이 마주치고는 금세 입을 다물었다. 꼭 맹수에게 찍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너무 시끄러웠나...? 깜짝 놀랐네.’ 하지만 변찬수가 입을 닫으니 이번에는 다른 친구들이 성다희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반에서 제일 뚱뚱했던 학생이어서 그런지 에피소드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때, 조용히 듣고만 있던 친구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성다희 말이야. 죽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순간 룸 안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죽었다고? 진짜?” “어쩐지... 그래서 연락을 안 받았던 거네.” “잠깐만! 정말 죽은 거 맞아? 사실 확인 된 얘기냐고.” “아마 진짜일 거야. 6년 전에 외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다희를 봤어. 그런데 배가 남산만 하게 나와 있더라. 얼굴은 피골이 상접해 있었고. 그런 상태면 보통은... 암 아니야?” “어떡해... 다희 너무 불쌍하다.” 실제로 성다희를 봤다는 얘기까지 나오자 분위기는 한층 더 가라앉아버렸다. “유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때 친구 중 한 명이 배유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 의사는 너밖에 없잖아. 네가 생각해도 암이었을 것 같아? 성다희는 집안이 여유로운 편도 아니었으니까 아마 그 많은 치료비를 전부 다 감당하기에는 무리였을 것 같은데.” 친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배유현에게로 쏠렸다.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