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날 갖고 노니 재밌어? 박지훈이 그렇게 가르쳐준 거야?” 윤성빈은 얼굴을 붉히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물었다. 밖에 내리는 빗소리에 채시아의 귓가엔 무엇이라도 무너지는 듯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더는 기억을 잃은 척하지 않고 말했다. “저는 그냥 과거를 잊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요.” 윤성빈은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음흉한 웃음을 짓더니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과거를 잊는다고 죽은 척한 거야? 그럼 내 기분은 어떨지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는 다른 한 손으로 채시아의 얼굴을 만지더니 그녀가 떨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넌 내가 두려워?” 채시아는 입술을 피가 터질 때까지 깨물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윤성빈 씨, 제발 부탁이에요. 아이를 저한테 돌려줘요.” “윤학이는 당신 아들이 아니라 저랑 박지훈의 아들이에요. 그러니 제발 돌려줘요.” 아이가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말을 채시아한테서 직접 들으니 윤성빈은 머릿속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실 한 가닥이 툭 끊어진 듯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너랑 박지훈이 함께 있을 때 우린 이혼을 결정한 지 두 달도 안 되었을 거야.” “그렇게 빨리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고? 그를 위해 죽은 척까지 해가면서? 그럼 우리 아이는?” 윤성빈은 눈시울을 붉히며 채시아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채시아는 손이 부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나중에 윤학이를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유산했다고 말했었잖아요.” 채시아는 다시 숨을 깊게 들이쉬고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빈 씨가 두 번째로 저한테 손을 댔을 때 기억나요? 그때 저는 임신한 상태였고 당신이 당신 손으로 직접 아이를 죽인 거예요.” 채시아는 자신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비열하다고 생각하지만 윤성빈이 죄책감 때문에라도 아이를 돌려주기를 바랐다. 윤성빈은 큰 충격을 받은듯했다. “다시 한번 말해봐.” 이 순간 윤성빈은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바로 그녀를 침대에 던져 온몸으로 내리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