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채시아는 무책임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남자와 다시는 얽히고 싶지 않았다. “죄송해요. 몇 년 전에 병을 앓아서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 있었던 일이 기억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한 채시아는 다시 뒤돌아서 발걸음을 옮겼지만 신도영은 여전히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그는 채시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옆에 있던 경호원들도 자신의 상사가 이렇게 망연자실하는 모습을 처음 봤기에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채시아는 구호관에 돌아오자마자 몰려오는 피로에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그녀가 잠든 시각 에스토니아 공항, 절친 조나연은 이미 오늘 밤 도항시에 도착하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채하진 또한 몰래 인터넷에서 같은 비행기 표를 구해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비행기에 올라탔다. 저녁 7시, 조나연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채시아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뒤에서 어린아이가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아이는 자기 몸보다 큰 여행 가방을 끌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아이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조나연은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엄마가 왜 애한테 저렇게 큰 가방을 들게 해?” “요즘 젊은 부모들이 진짜...” “저런 사람도 엄마라니!” 조나연은 그저 어리둥절했고 왜 사람들이 마치 자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쳐다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어린아이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걸을 때 핸드폰만 보지 마. 조심해야지.” 조나연은 깜짝 놀라 뒤돌아 어린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얼굴은 마스크와 모자에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순간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뭐야? 나한테 언제 아들이 생긴 거지?’ 조나연은 아이가 끌고 있는 큰 가방과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어떡하지? 이 어린애한테 욕할 수도 없고.’ 만약 채시아가 아들이 몰래 자신을 따라왔다는 걸 알면 미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