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휴대폰이 갑자기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고 메시지가 연달아 쏟아져 들어왔다.
[지안아! 빨리 단체방 좀 확인해 봐!]
[서강준, 미친 거 아니야?]
[서강준이 너의 하룻밤 소유권을 경매하고 있어!]
임지안의 손가락이 굳어버리며 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서강준, 정말 잔인하네.’
그녀는 차 키를 챙겨 거의 뛰다시피 경매장으로 향했다.
경매장은 화려한 조명으로 반짝였다.
무대 아래 서강준은 검은 정장을 입고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는 흰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자를 보고 임지안은 심장이 세게 움찔거렸다.
서강준이 데려온 한미주는 임지안의 언니 임지현을 쏙 빼닮은 여자였다.
대형 스크린에는 임지안의 사적인 사진들이 떠 있었다. 남자들의 흥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4억 원!”
“6억 원!”
“10억 원!”
마지막으로 한 대머리 남자가 벌떡 일어나 얼굴 경련을 일으키며 외쳤다.
“백억! 임지안과의 하룻밤을 내가 사겠어요!”
순간 주위가 술렁거렸다.
임지안은 제자리에 굳은 채 몸속의 피가 모두 멎는 것 같았다. 그녀는 서강준을 바라봤지만 그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저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낙찰.”
대머리 남자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서 대표님, 정말 제가 데려가도 됩니까?”
“물론이지.”
서강준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눈빛은 싸늘했다.
“돈이 입금되면 그녀는 당신 거야.”
그 말은 비수처럼 임지안의 가슴을 찔렀다.
대머리 남자가 손을 뻗어 임지안을 끌고 가려는 순간 그녀는 탁자 위의 술병을 움켜쥐고 서강준의 머리를 그대로 내리쳤다.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고 피가 서강준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감히 내 몸에 털끝 하나라도 손대 봐.”
입가에 냉소가 번졌지만 임지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오늘 밤에 누가 낙찰했든 내가 두 배로 돌려줄 테니 지금 당장 꺼져.”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때 서강준이 낮게 웃음을 터뜨리며 느릿하게 박수를 쳤다.
“임지안, 예전의 기세가 아직 남아 있네.”
그가 일어나 그녀 앞에 몸을 숙이고 다가서며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내가 한 번 팔 수 있다면 두 번, 세 번도 가능하지 않을까?”
잠시 멈칫하던 서강준은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임지안, 매번 낙찰 값을 돌려줄만큼 돈은 갖고 있어? ”
임지안은 눈가가 붉어진 채 그를 올려다봤다.
“서강준, 이렇게까지 나를 미워해야겠어?”
“미워해?”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겼던 두 사람을 죽였어. 미움도 부족 할 정도야, 모르겠어?”
심장이 세게 죄어들며 통증이 느껴졌다.
임지안은 서강민을 떠올렸다. 언제나 따뜻하게 웃던 남자, 어릴 적부터 무슨 일이든 임지안의 편이 되어주던 사람.
사춘기 소녀인 임지안이 그를 좋아했던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서강준은 늘 임지안의 언니 임지현을 바라봤다. 조용하고 온화한 미소를 짓던 그 여자를 사랑했다.
그 시절, 네 사람은 자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임지안과 서강준은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했고 그 옆에서 서강민과 임지현은 미소를 띠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던 어느 날, 서강민이 임지현의 손을 잡고 양가 부모 앞에서 결혼 발표를 했다.
그 소식에 임지안은 세상이 무너졌고 밤새 울다 결국 집을 뛰쳐나왔다.
서강민과 임지현은 임지안이 걱정돼 찾아 나섰다가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두 사람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그 후 임지안은 며칠이고 영정 앞에 무릎 꿇은 채 울었고 거의 혼이 나간 상태였다.
그녀를 안으며 달래준 사람은 서강준이었다. 그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밤마다 그녀 곁을 지켰다.
악몽에서 깨어나면 불을 켜주었고 밥을 먹지 않으면 직접 요리를 해줬다. 한밤중에 울면 조용히 따뜻한 물을 건넸다.
그 따뜻함에 임지안은 서강준에게 서서히 의지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깊은 밤, 서강준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지안아, 나는 너를 좋아하게 됐어. 나랑 결혼하자.”
임지안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평생 너를 지켜줄게.”
그의 낮은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너도 나한테 마음이 생겼잖아. 그렇지?”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서강준은 허우적대던 임지안을 붙잡아 어둠 속에 등불을 켜주었고 그녀는 그 시간 동안 어릴 적부터 티격태격했던 서강준에게서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결혼을 승낙했다.
결혼식 날, 임지안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꽉 쥐었다. 이제야 새 삶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연회장의 대형 스크린이 켜졌고 그 위에는 그녀의 사적인 사진들이 떠 있었다.
“제 아내의 몸매, 다들 만족스러우신가요?”
단상 위의 서강준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사진들을 여러분들에게 신혼 선물로 드리죠.”
임지안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서강준, 이게 무슨 짓이야?”
서강준은 단상에서 내려와 임지안의 턱을 움켜쥐었다.
“너는 내 형과 지현이를 죽였어.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너를 속여서 결혼한 건 너를 내 곁에 묶어두고 평생 죗값 치르게 하려던 것뿐이야.”
임지안은 냉소를 지었고 온 몸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그녀는 샴페인 병을 들어 서강준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날 이후, 그들은 다섯 해 동안 서로를 갉아먹으며 살아왔다.
아무도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임지안은 진단서를 꽉 쥐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그 일은 나도 원치 않았어. 서강준, 우리 반 달만 조용히 지낼 수 없을까. 싸우지 말고. 반 달 뒤면 모든 게 끝날 거야.”
어차피 반 달 뒤면 임지안은 죽는다. 그럼 서강준의 원한도 자연스레 끝날 것이다.
하지만 서강준은 우스운 얘기를 들은 듯 비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거짓말까지 배웠어? 네가 무슨 수로 원한을 끝내?”
임지안은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반 달 뒤에 알게 될 거야.”
그녀가 낮게 말했다.
“그때가 되면 내가 너한테 직접 대답해 줄게.”
냉소를 띤 채 서강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가 그 두 사람의 목숨을 어떻게 갚을지 지켜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