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갑작스러운 남자의 말에 경매장이 술렁였다.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올인 입찰 맞으십니까?”
경매사가 조금 놀란듯한 얼굴로 물었다.
“네, 맞습니다. 저는 문씨 가문 도련님의 비서로 신하린 씨가 원하는 물품은 무조건 올인 입찰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문씨 가문의 도련님이면 하나밖에 없는 가문의 후계자 아니야? 정말 그 사람이 저런 지시를 내렸다고?”
“이제껏 스캔들 한번 없었는데 갑자기 웬일이래?”
“왜긴 왜야. 둘이 비밀리에 만나고 있나 보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짐에 따라 처음에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던 신하린의 얼굴이 점차 놀라움으로 변하더니 마지막에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바뀌어버렸다.
“저기, 혹시 그분은 지금 어디 있나요?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신하린이 볼이 빨갛게 물들이며 비서에게 물었다.
“도련님께서는 현재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도련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실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하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겼다는 얼굴로 신주은을 바라보았다.
“언니, 계속 응찰할 거야? 아, 그럴 수가 없지? 올인 입찰을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여기서 더 하면 파산이지.”
신주은은 완전히 굳어버린 얼굴로 문재하를 노려보았다.
문재하는 그녀가 보고 있든 말든 아까부터 줄곧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신하린만 보고 있었다.
그 뒤로 경매는 완전히 신하린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비서는 지시대로 신하린이 마음에 들어 하는 물건이라면 전부 다 최고가로 낙찰했고 그 결과 루비 목걸이를 포함해 티 세트와 도자기, 그리고 중세시대의 예술품까지 전부 다 신하린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니 신주은은 패들을 들 기회조차 없었고 더는 못 참겠던지 경매 후반쯤 비서를 향해 물었다.
“그쪽 도련님은 다른 사람 생각은 전혀 안 하나 봐요?”
그 말에 비서는 문재하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가 사인을 받고 냉랭한 말투로 답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도련님께서 신하린 씨가 원하는 물건은 어떻게든 손에 넣으라고 해서요. 신주은 씨는 다음번 경매를 노려보시는 게 어떠실지.”
“하!”
신주은은 헛웃음을 치며 계속해서 신하린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문재하를 노려보았다.
‘세기의 사랑 납셨네, 아주.’
경매가 끝난 후 사람들은 신하린을 둘러싸며 연신 부럽다는 말을 건넸다.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신주은은 끝나자마자 아무 말 없이 행사장을 나서며 차에 올라타자마자 기사에게 클럽으로 갈 것을 요구했다.
이 더러운 기분을 술로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차 문이 닫히기 전에 갑자기 신하린이 뛰어오며 뒷좌석에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언니, 클럽 가는 거면 나도 데려가 줘. 나도 오래간만에 실컷 음악이나 들으면서 놀고 싶단 말이야. 응? 응?”
“누구 마음대로...”
“출발하시죠.”
신주은이 안된다고 하려던 그때 문재하가 조수석에 올라타며 차를 출발시켰다.
“아싸! 언니 고마워.”
신주은은 기막힌 상황에 포기한 듯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는 길, 신하린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방금 행사장에서 있었던 일을 쉴 틈 없이 떠들어댔다.
“재하 오빠, 문씨 가문의 그분은 대체 왜 비서분한테 그런 지시를 내린 걸까요? 나랑 한번도 만난 적 없는데.”
문재하는 피식 웃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가씨를 좋아하나 보죠.”
이에 신하린은 눈을 크게 뜨며 금세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지금 나 놀리는 거죠? 내가 뭐라고 그분이 날 좋아해요.”
“남자의 마음은 남자는 제일 잘 압니다. 남자가 돈을 썼다는 건 그만큼 마음이 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문재하는 룸미러로 신하린을 바라보며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가씨는 제가 본 여성 중 가장 착하고 좋으신 분입니다. 그러니 그런 아가씨를 좋아하게 되는 게 신기하거나 이상한 일은 아니죠.”
“그럼... 재하 오빠도 내가 좋아요?”
신하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문재하는 3초간 침묵한 후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을 내뱉으려던 찰나 신주은이 냉랭한 목소리로 둘 사이의 분위기를 깨버렸다.
“둘이 썸 탈 거면 지금 당장 내 차에서 내려.”
“미안해, 언니. 시끄러웠지? 이제 아무 말도 안 할게.”
신하린은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고 신주은은 대꾸 한번 없이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창문을 통해 문재하가 얼마다 다정한 눈빛으로 신하린을 보고 있는지, 또 얼마나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전부 다 지켜보았다.
신주은은 자조하듯 웃으며 조금 쓸쓸한 표정으로 창밖의 가로등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