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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문재하는 갑자기 등장한 신주은을 보고도 그저 눈길만 슬쩍 줄 뿐 전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여유롭게 사진을 베개 밑에 숨기더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바지 지퍼를 끌어 올렸다. 조금 전까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신하린을 생각하던 남자와 동일 인물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주은은 그런 그의 행동에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끝까지 못 간 것 같은데 내가 좀 도와줄까요?” 문재하는 고개를 뒤로 살짝 젖히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는 늘 이랬다. 신하린 앞에서는 표정이 금방 무너졌지만 그녀 앞에서는 욕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스님처럼 행동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얼굴로 보나 몸매로 보나 신하린은 신주은보다 눈에 띄진 않았지만 착한 척과 여린 척을 자주 해댄 덕에 남자들에게 의외로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그 수법이 문재하에게도 통했던 터라 신주은은 꽤 오래 질투 아닌 질투의 감정을 품었었지만 그 감정도 오늘로 끝이었다. 외면당한 사랑은 비참하기만 할 뿐이니까. “내일 경매에 참석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자기 할 말만 전하고 다시 나가려는 신주은의 뒷모습을 보며 문재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며칠 전에 이미 휴가를 받았...” “신하린도 온다고 하던데.” 문재하는 신하린도 참석한다는 말에 3초간 침묵하더니 곧바로 말을 바꿨다. “...준비하겠습니다.” 신주은은 욱신거리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며 문을 닫았다. ‘걱정하지 마. 조만간 내 손으로 직접 너를 신하린 곁으로 보내버릴 테니까.’ 다음날. 준비를 마친 신주은은 오늘도 하이힐을 신은 채 문을 나섰다. 문재하는 어느 틈에 나온 건지 이미 차량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검은 슈트에 올린 머리, 특별할 거 없는 헤어스타일과 차림인데도 문재하는 참으로 멋있어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지금쯤 걸어오다가 무언가에 걸린 척 문재하의 품에 안기거나 일부러 그의 귓가에 장난스레 숨결을 불어 넣는 짓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신주은은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고 차에 탈 때까지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문재하는 그 모습에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평소보다 더 많이 쳐다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금세 흥미를 잃은 듯 조수석에 앉았다. 경매장으로 가는 길 내내 신주은은 창밖만 구경할 뿐 아무런 대화도 건네지 않았다. 경매가 진행되는 장소는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선 최고급 호텔이었다. 호텔 로비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신하린이 눈에 들어왔다. 흰색 원피스를 입은 채, 긴 머리를 어깨 너머로 늘어뜨리고는 해맑고 순수한 얼굴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문재하는 신하린을 보자마자 굳어있던 얼굴을 풀고 천천히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신주은은 문재하의 앞쪽에 서 있었지만 지금쯤 문재하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눈에 선했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언니!” 그때 두 사람을 발견한 신하린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며 신주은의 팔짱을 꼈다. “여기로 오는 거면 말하지. 나도 같이 오게.” “멋대로 내 몸에 손대지 마.” 신주은이 냉랭하게 말하며 손을 뿌리치자 신하린은 금세 눈가가 빨개져서는 속상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문재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냥 여기서 언니를 본 게 반가워서...” 문재하는 신주은을 향한 혐오의 감정을 감추지 않았고 그걸 본 신하린은 이때다 싶어 문재하의 옷 끝을 살짝 잡았다. “재하 오빠, 전에 나 아팠을 때 그 새벽에 비를 뚫고 우리 집에 팥설기를 가져다주러 왔다면서요? 그 뒤로 다 낫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려서 제대로 인사도 못 했는데 고마워요. 그리고 내가 먹고 싶다고 노래 불렀던 거 기억해 준 것도요.” 문재하는 그녀의 말에 금세 표정을 풀며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저 지나가다가 들린 것뿐입니다.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웃기시네.’ 신주은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5시간 만에 비를 쫄딱 맞은 채로 돌아온 게 지나가다가 들린 거야?’ “제가 밥 살게요. 정말 고마워서 그래요.” 신하린의 애교 섞인 얼굴에 문재하는 사르르 녹아버려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언니도. 언니도 같이...” 신하린은 신주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 얼굴이 왜 이렇게 초췌해 보여? 아팠던 건 난데...” “너 나랑 친하니? 그리고 사생아면 사생아답게 굴어. 어쭙잖게 친한 척하지 말고.” 신하린의 얼굴은 한순간에 어두워졌고 문재하는 주먹을 꽉 말아쥔 채 신주은의 뒤통수를 뚫어버릴 듯 노려보았다. 어색한 분위기가 길어지려던 그때 다행히 경매가 시작됐고 신주은은 지정된 자리로 가 살포시 앉았다. 오늘 그녀가 이곳에 온 건 예물 준비 때문이었다. 신성철이 알아서 다 준비해 주겠다고는 했지만 이제껏 아빠 노릇을 한 번도 안 해줬던 인간이 지금이라고 제대로 준비해 줄 리가 만무했으니까. 경매에 첫 번째로 나온 물품은 루비 목걸이로 시작가는 2억 원이었다. “4억.” 신주은은 확실하게 낙찰받을 생각으로 초반부터 두 배의 값을 불렀다. 그런데 그때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신하린도 패들을 들었다. “6억이요.” 신하린은 신주은 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언니, 나도 저거 마음에 드는데 언니가 양보해 주면 안 될까? 아빠가 준 용돈을 봤을 때 내가 낙찰받을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은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매달 어마어마한 용돈을 받는 신하린과 달리 신주은은 그것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용돈만 받았으니까.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산이 아니었다면 신주은은 아마 생계조차 막막했을 것이었다. “8억.” 신주은이 다시금 패들을 들자 신하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곧바로 따라 패들을 들었다. “8억 5천.” “10억.” “10억 5천.” 좀처럼 끝나지 않는 입찰 경쟁에 신하린은 고개를 돌리며 아까보다는 조금 어두워진 얼굴로 물었다. “언니, 적당히 하는 게 좋을 텐데? 애초에 지불할 돈은 있어?” “20억.” 그때 신주은이 20억을 부르며 그녀에게 비웃음을 날렸다. “지불할 능력이 안 되는 건 너 아니고?” 신하린은 할 말이 없는지 패들을 들고 있는 손만 부들부들 떨었다. “현재 최고 응찰가는 20억입니다. 더 응찰하실 분 없으십니까?” “잠시만요!” 경매사의 말에 신하린은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며 신성철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잠시 후 답장을 확인한 그녀의 얼굴은 한층 더 어두워졌고 신주은은 입꼬리를 올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웬 남자 한 명이 갑자기 패들을 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올인 입찰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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