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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7년간의 비밀

“유감스럽지만 이번 인공수정도 실패했습니다.”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든 임가윤의 손끝이 다소 차가웠다. 벌써 몇 번째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7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모두가 문씨 가문의 후계자를 고대했으나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자연임신, 민간요법, 시험관 시술, 심지어 수술까지... 별별 방법을 다 시도했다. 이내 몸을 돌려 진료실 문을 두드리려던 찰나, 안에서 그녀에 대한 뒷이야기가 들려왔다. “임가윤 씨도 참 불쌍하지, 자궁 내막이 그렇게 얇아졌는데 이건 자기 몸만 망치는 거잖아요.” “뭐가 불쌍해요? 남편분이 애 낳기 싫어하는 거 몰라요? 백만 번 시도해도 결국은 헛수고죠.” 임가윤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손이 허공에 우뚝 멈추었다. 문태오가 임신하는 걸 원치 않는다니? ... 무슨 정신으로 집에 도착했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임가윤은 침대에 웅크려 누웠다. 초여름의 햇볕은 따스하게 내리쬐었지만 오한이 든 것처럼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침대 매트리스가 갑자기 출렁거리더니 독한 술 냄새와 함께 청량한 향기가 풍겨왔다. 문태오가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뜨거운 손이 익숙하게 실크 잠옷 안으로 파고들었다. “나 안 보고 싶었어?” 능수능란한 손길에 몸이 먼저 반응했으나 임가윤의 마음은 서서히 식어갔다. 오늘 그녀가 결과를 확인하러 병원에 다녀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전혀 묻지 않았다. “또 임신 안 됐대.” 그녀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문태오의 손이 멈칫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이내 평온한 목소리로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알았어. 고생했어. 두 달 정도 출장 갈 거니까, 몸 잘 챙기고. 아줌마한테 보양식 좀 만들어 달라고 해.” 곧이어 뜨거운 키스가 이어졌다. 술기운이 어린 입맞춤은 지독하게 집요하고 뜨거웠다. 임가윤은 원하지 않았지만 거부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저 그가 원하는 대로 모든 걸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문태오는 다정한 남자였다. 거사를 치르고 나면 그녀를 안아 욕실로 데려가 씻겨주고 다시 침대에 눕혀 품에 안은 채 잠들곤 했다. 늘 그랬듯, 모든 것이 똑같이 반복되는 밤이었다. 둘도 없고 사랑이 넘치며 그 누구보다 다정한 부부 같았다. 옆에서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지만 임가윤은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시선은 저도 모르게 소파에 놓인 서류 가방에 닿았다. 7년 동안 문태오의 물건에 손을 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는 아내로서 응당 지켜야 할 도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곤히 잠든 얼굴을 바라보던 임가윤은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잠시 후 서류 더미 아래서 하얀 알약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피임약이었다. 임가윤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정작 그녀는 임신을 준비하느라 입에 대지도 않았고, 친구에게서 우연히 본 게 전부였다. 당시 문태오와 워낙 금실이 좋아서 평생 쓸 일이 없을 거라는 농담도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뒤통수 맞을 줄이야. 병원에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허탈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임신을 준비하는 남자가 피임약을 휴대하고 있다니,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외도? 아니면... 이때, 머릿속을 스치는 일이 있었다. 문태오는 아줌마에게 늘 그녀를 위해 보양식을 챙기라며 당부했다. 그 순간 온몸에 싸늘한 한기가 스며들었다. 손이 저절로 떨렸고, 가방 안쪽에서 사진 한 장이 툭 떨어져 나왔다. 하얗게 닳아버린 모서리만 보더라도 손때를 얼마나 많이 탔는지 알 수 있었다. 사진 속 소년은 해맑은 표정을 지었고, 옆에는 한 여자아이가 다정하게 몸을 기댔다. “뭐 하는 거야?” 문태오가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사진을 낚아채며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였다. “내 뒷조사하는 거야? 언제부터 이렇게 철이 없어졌어?” 임가윤은 마치 농담이라도 들은 듯 웃음을 터뜨렸다. 심지어 눈물이 핑 돌았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철이 없다고? 오히려 그동안 너무 고분고분해서...” 이내 웃다가 갑자기 아랫배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어둠 속으로 빠져들기 직전,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건 당황한 문태오의 얼굴이었다. ... “쿨럭, 쿨럭.” 임가윤은 눈을 번쩍 떴다. 끔찍한 고통은 여전했고, 코를 찌르는 자욱한 연기 때문에 연신 기침했다. “불이야! 얼른 도망가요.” “살려주세요!” 귓가에 소란스러운 비명과 외침이 맴돌았다. 이내 몸을 일으켜 어리둥절한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흩어진 탁자 위 여기저기 넘어져 있는 술병들, 연기 속에서 어렴풋이 반짝이는 형형색색의 조명. 임가윤의 시선이 멀지 않은 소파에 멈췄다. 익숙한 실루엣이 그곳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술에 만취해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박소혜였다. 분명 7년 전 화재에서 죽었을 텐데... 머릿속을 문득 스치는 생각에 급히 탁자 위의 휴대폰을 집어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2026년 5월 18일 22:50] 임가윤은 숨이 턱 막혔다. 무려 7년 전, 박소혜가 불길에 휩싸여 죽었던 그 날 밤으로 돌아왔다. 설마... 환생한 건가? 불길은 점점 거세졌고, 그녀는 문 쪽으로 몸을 옮기려 했지만 발목을 삐끗한 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뼛속까지 아픈 고통이 밀려왔다. 쾅! 굉음과 함께 누군가 문을 뻥 걷어찼다. 짙은 연기 속에서 우뚝 솟은 그림자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전생에 수도 없이 많이 봐 왔던 남자의 얼굴이 눈앞에 있는 사람과 겹쳤고, 오랫동안 믿어온 만큼 거의 본능적으로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태오야...” ‘날 구해줘.’ 7년 전의 문태오는 풋풋한 기색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 속에는 이미 훗날의 날카로움과 차분함이 언뜻 엿보였다. “걱정하지 마. 내가 구해줄게.” 익숙하고도 다급한 목소리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기 전의 소년다운 날 선 기운이 담겨 있다. 그녀는 믿었다. 문태오가 전생처럼 망설임 없이 달려와 자신을 품에 꼭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해 줄 거라고. 그러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멈칫했다. 잠시 후, 단호하게 그녀를 스쳐 지나간 남자는 곧장 박소혜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한 마디 던졌다. “따라 와.” 이내 박소혜를 안고 앞만 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임가윤이 내민 손은 허공에 멈춰버렸다. 어느덧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녀는 발목을 다쳐 뛸 수 없었다. 설마 박소혜 대신 죽으라고 자신을 두고 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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