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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순수하면서도 직설적인 말이 송곳처럼 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배지욱은 아플 때도, 가장 연약할 때도 자기를 아프게 만든 여자를 떠올렸다. 나는 고개를 숙여 배지욱을 바라봤다. 아파서 기운이 많이 빠진 건지 배지욱은 그렇게 말한 뒤 곧장 잠이 들었다. 배현민은 배지욱의 말을 듣고 내 손을 잡았다. “여보.” 나는 배현민과 대화를 나눌 마음이 없어서 그의 손에서 내 손을 빼내려고 했다. 그러나 배현민은 손에 힘을 주면서 손을 빼내지 못하게 했다. “오늘 일은 진짜 우연이었어. 어머니가 멋대로 지욱이를 홍시연한테 보낸 거야. 지욱이도 아파서 그런 거지, 일부러 그런 말을 한 건 아닐 거야...” “나는 지욱이를 이해할 수 있어.” 나는 배지욱을 안아 들고 병원 밖으로 나갔다. “지욱이는 지금 홍시연 씨를 좋아하니까 홍시연 씨의 모든 점이 다 좋아 보일 거야.” 나는 잠깐 뜸을 들인 뒤 말을 보탰다. “그런데 나는 지욱이가 홍시연 씨를 만나는 걸 금지했어. 그러니까 처음에는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어. 지욱이는 착한 아이야. 내가 잘 가르치면 진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될 거야. 하지만 당신은 나랑 약속한 거 꼭 지켜야 해. 오늘 일은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겠지만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없어야 해.”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멈춰 섰고, 배현민은 내가 힘들어할까 봐 자진해서 배지욱을 받아 안았다. “알겠어. 꼭 약속할게, 여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배현민의 품속에 안겨 깊이 잠든 배지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집에 도착한 뒤 배현민은 차를 세웠다. 나는 배지욱이 깊이 잠든 것 같아 깨우지 않고 아이를 안은 채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배현민이 어느샌가 조수석 문 앞에 서 있었다. 그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안을게.” 그러고는 한 손으로 아이를 번쩍 안아 든 뒤 나를 향해 다른 손을 뻗었다. 나는 조금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가로등 불빛이 배현민의 몸 위로 쏟아졌다. 큰 키에 잘생긴 얼굴을 한 그는 마치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신과 같았다. 배현민이 부드럽게 말했다. “여보, 우리 집에 가자.” “응.”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쉰 뒤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 “가자.” 집에 도착한 뒤 배현민은 배지욱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따뜻한 물을 받아서 배지욱의 침실로 가져왔고 배현민은 내게 협조하듯 배지욱의 옷을 벗긴 뒤 젖은 타월로 배지욱의 몸을 닦아주었다. 배지욱은 아주 깊이 잠든 상태라 몸을 다 닦고 파자마를 입혀줄 때까지도 깨지 않았다. 그저 이따금 불편함을 느끼고 작게 앓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배현민은 그 모습을 보고 사랑스럽다는 듯 미소 지은 뒤 타월을 대야 안에 넣고 대야를 들고 방에서 나갔다. 나는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배지욱을 바라봤다. 배지욱은 최근 들어 나를 점점 더 싫어했다. 매번 내가 대화를 나누려고 하면 바로 짜증을 내며 나를 향해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우리가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때는 오로지 배지욱이 잠들었을 때뿐이다. “여보.” 배현민이 나를 불렀다. 그는 내 앞으로 걸어온 뒤 허리를 숙이며 나를 안아 들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배현민의 목에 팔을 두르며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배현민은 팔꿈치로 스위치를 눌러서 불을 끈 뒤 배지욱의 방문을 닫았다. 그는 일부러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병원에 가기 전에 우리가 했던 말들 기억해?” 비록 병원에 가기 전에 있었던 일은 깨끗하게 잊었지만 병원에 도착해서 일어났던 일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를 안은 순간 나는 진심으로 배현민과의 이혼을 고려했다. 그러나 나와 배현민이 이혼하기도 전부터 홍시연이 이토록 내 아이를 힘들게 만드는데, 내가 배현민과 이혼한다면 배지욱이 과연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까?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혼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들이 밤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기에 병원에 가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우리 무슨 말을 했었지?” “벌써 까먹은 거야?” 배현민은 자연스럽게 방문을 닫고 큰 손으로 내 얼굴을 받쳐 들면서 내게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여보...” 조용한 밤, 배현민의 낮은 목소리에서 은근한 유혹이 느껴졌다. 배현민은 작게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제 기억났어?” 배현민은 나를 놀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일이 배현민의 뜻대로 되는 걸 원치 않았다. “어떡하지? 기억이 안 나네.” 배현민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쳤다. 길게 내려뜨린 머리카락은 흰 이불 위로 내려앉았고, 입맞춤 때문에 붉어진 얼굴은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배현민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러면 내가 기억나게 해줄게...” ... 나는 정신적인 충격과 지친 몸 때문에 매우 피곤했으나 바로 어제 배지욱이 위장 때문에 병원에 실려 갔었기에 반드시 아이를 정성 들여 돌봐야 했다. 그래서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두 사람을 위해 아침을 준비해야 했다. 배지욱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흰죽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죽을 최대한 부드럽게 끓이려고 일부러 뚝배기를 꺼내서 우선 센불로 물을 끓인 뒤 약불로 천천히 끓였다. 시간을 보니 겨우 다섯 시가 조금 넘었다. 나는 근처 시장에 가서 채소와 고기를 샀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채소를 깨끗하게 씻고 다듬었다. 그러고 나서는 배현민이 일어날 때쯤부터 다른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죽을 제외한 음식은 총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청경채 볶음이고 다른 하나는 소고깃국이었다. 나는 두 가지를 다 해둔 뒤 두 사람에게 밥을 먹으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바로 그때 타닥타닥 발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배지욱이 달려와 내 앞에 섰다. 배지욱은 불만스러운 듯이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당분간 집에 오기 싫으니까 할머니 집에서 지내겠다고...” 배지욱은 나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내가 아파서 병원에서 수액을 맞았더라도 병원에서 나오면 바로 할머니 집으로 보내줬어야지!” 배지욱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할머니를 핑계 삼아 자신이 바라는 대로 홍시연과 계속 만나려고 했다. 나는 배지욱의 그런 얕은 속셈을 까발렸다. “할머니 집에 가면 할머니가 너를 홍시연 씨 집에 데려다주니까?” 배지욱은 당황했다. 배지욱은 아직 어려서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다 보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배지욱, 오늘부터 나는 너를 할머니 집에 보내지 않을 거야.” 배지욱은 본능적으로 반박했다. “엄마가 무슨 자격으로?” 나는 보기 드물게 강압적인 태도로 말했다. “난 네 엄마니까!” “나는 엄마가 내 엄마인 게 싫어!” 배지욱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시연 이모 집에 갈 거야. 시연 이모가 내 엄마가 되게 할 거야!” 배지욱은 내가 열 달 동안 품고 있다가 낳은 아이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배지욱을 정성껏 보살폈다. 그러나 배지욱은 그에게 아무것이나 먹어 배탈 나게 만든 여자를 위해 나를 버리겠다고 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배지욱의 까만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했다. 우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불만을 모조리 쏟아내기 힘들었는지 배지욱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통통한 두 손으로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컵을 들어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물과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손발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배지욱이 던진 것이 컵이 아니라 내 마음 같았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배지욱은 무엇 때문에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자 때문에 엄마인 내게 상처를 주는 걸까? 배지욱은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집안의 부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깨부수려고 했다. 방 안에서 나온 배현민은 아수라장이 된 거실과 물건을 깨부수고 있는 배지욱을 번갈아 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배지욱, 지금 뭐 하는 거야?” 배지욱은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는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배현민의 앞으로 달려가서 말했다. “아빠,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건 시연 이모잖아요. 제발 엄마랑 이혼하고 시연 이모랑 결혼해요. 저는 시연 이모가 우리 엄마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시연 이모랑 가족이 되고 싶고, 시연 이모랑 같이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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