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배지욱은 고개를 들어 배현민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동자에서 아이들 특유의 앳됨과 순진무구함이 보였고 그 모습이 가련하기도, 사랑스럽기도 했다.
배현민이 쭈그려 앉았다.
배지욱은 더 이상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볼 필요가 없었다. 배지욱은 배현민과 눈을 맞추며 훌쩍거렸다.
“아빠, 저랑 약속해 줘요.”
“지욱아, 넌 아직 어려.”
배현민도 아들 배지욱을 아꼈다. 그는 손을 들어 배지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욱아, 엄마한테 그렇게 화를 내면 앞으로 후회하게 될 거야.”
배지욱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배현민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던 것인지 배지욱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배현민에게 말했다.
“아빠, 엄마랑 이혼하고 우리 시연 이모랑 같이 살아요. 저는 시연 이모가 우리 엄마가 됐으면 좋겠어요! 진짜예요!”
배지욱은 확신에 가득 차서 말했다.
배현민은 대답하지 않고 배지욱의 어깨를 토닥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배지욱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나는 홍시연과 가족이 되고 싶다던 아이의 말을 그저 단순한 변덕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배지욱이 오늘 이렇게 심하게 화를 내는 걸 보면 단순한 변덕이 아닌 듯했다.
배지욱은 진심으로 홍시연이 자신의 엄마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면 나는?
그동안 배지욱을 위해 헌신해 온 나는?
배지욱에게 버림받는 것이 당연한 걸까?
심장이 아려왔다.
마치 수많은 개미들이 내 심장을 갉아 먹는 것만 같았다.
“여보.”
배현민이 다가와 나를 끌어안고서 큰 손으로 내 등을 토닥이며 다정하게 나를 위로했다.
“슬퍼하지 마. 지욱이는 아직 어려서 자기가 한 말의 의미를 몰라.”
나는 배지욱이 무슨 말을 하든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고 몇 번이나 자신을 설득했다.
배지욱은 아직 어리니까 내가 더 품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배지욱의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인 말은 내 마음에 너무도 쉽게 스크래치를 남겼다.
나는 배현민에게 안긴 채로 힘겹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은 뒤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밥 먹어.”
배현민은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들고나와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배현민은 내가 손을 델까 봐 본인이 직접 뚝배기를 들고나왔다.
배지욱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자 매우 실망했다.
“아빠!”
“밥 먹어.”
배현민은 단호히 말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배지욱은 그제야 얌전히 자리에 앉아 그릇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집 안에 유리 조각이 너무 많아서 나는 혹시라도 그들이 유리 조각에 찔릴까 봐 두 사람이 밥을 먹을 때 청소했다.
배지욱은 밥을 먹는 와중에 짧은 두 다리를 달랑거리면서 투덜댔다.
“저는 엄마가 싫어요! 엄마가 미워요!”
나는 바닥을 쓸다가 멈칫했다.
나는 마음이 아려오기 전에 자신을 위로했다.
이미 예상한 일이지 않은가?
홍시연과 연락하지 못하게 하면 배지욱은 처음엔 아주 강하게 반발하고 반항할 것이며 말도 점점 더 심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것이다.
내가 바닥에 있던 유리 조각들을 다 치웠을 때 두 사람도 아침을 다 먹었다.
배현민은 아이를 데리고 현관 앞에 선 뒤 말했다.
“엄마한테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해야지.”
“싫어요!”
배지욱은 콧방귀를 뀌면서 나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홱 돌렸다.
나는 집 안쪽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는데 이제는 조금 무덤덤해졌다.
“여보.”
배현민은 내 손을 잡더니 내게 가까이 다가와 몰래 입을 맞추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거야.”
“응.”
...
배지욱은 유치원을 다녔다.
우리는 매일 아침 8시 전에 배지욱을 집에서 보내고 오후 6시에 배지욱을 데리러 유치원으로 갔다.
평소 배현민은 내가 힘들어한다고 본인이 퇴근할 때 배지욱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내가 직접 배지욱을 데리러 갈 것이다.
나는 배지욱과 더 오래 있으면서 아이와 나 사이의 정을 키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늘 나는 그 사실을 배현민에게 미리 얘기해주지 않았고, 배현민이 퇴근하면 셋이서 함께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배지욱을 데리러 가기 위해 나는 오늘 빠르게 집안일을 마친 뒤 한 시간 일찍 출발하여 일찌감치 유치원 앞에 도착했다.
한참 동안 기다린 끝에 드디어 유치원 하원 시간이 되었다.
문이 열리고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막고 서서 학부모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체크한 뒤 아이들을 학부모들에게 인계했다.
“배지욱!”
선생님이 목청을 높이며 물었다.
“배지욱 어린이 학부모 계신가요?”
“네!”
나는 손을 들고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내 옆을 지나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붉은 치마를 입은 홍시연을 보았다.
홍시연은 웨이브가 들어간 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고, 공들여 화장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배지욱 어린이 학부모예요.”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홍시연이 유치원에 찾아와서 학부모인 척하며 배지욱을 데리러 오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설마 배현민이 그동안 날 속였던 걸까?
배현민은 본인이 퇴근길에 배지욱을 데리러 간다고 했으나 사실은 홍시연에게 아이를 데리러 가라고 시켰을 것이다.
홍시연이 나의 아이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려고 말이다.
그런 추측들 때문에 나는 가슴이 무너져 내려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지욱이 어머님.”
선생님은 홍시연에게 말을 건네며 경계 어린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조금 전에 제가 지욱이 학부모님을 불렀을 때 저분도 대답하셨는데 혹시 아는 사이신가요?”
‘뭐라고?’
선생님은 홍시연을 지욱이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이 어지러워졌고, 곧 한 가지 문제를 깨달았다.
이 유치원에는 내가 배지욱의 친모라는 걸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다들 홍시연을 배지욱의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 말은 내가 모르는 사이 홍시연이 몇 번이나 배지욱을 데리러 왔다는 걸 의미했다.
그렇다면 누가 그녀와 함께 배지욱을 데리러 왔길래 선생님이 홍시연을 배지욱의 엄마라고 여긴 것일까?
진실은 예리한 칼날이 되어 내 심장을 갈기갈기 찢었다.
배현민이 그랬을까?
홍시연은 나를 본 적이 없었기에 나를 본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배지욱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지욱아, 이리 와 봐. 이 이모 누군지 알아?”
‘나? 내가 이모라고?’
나는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배지욱은 내가 열 달 품어 낳은 아이였는데 사람들은 나를 배지욱의 이모라고 불렀다.
우스운 일이었다.
내가 반박하려는데 배지욱이 얌전히 홍시연의 곁으로 걸어가서 홍시연의 손을 잡은 채로 멀리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한참 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엄마, 저는 모르는 사람이에요.”
쿵.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고, 곧 귓가에서 이명이 들렸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다른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배지욱이...
내가 낳은 내 아들이 내 앞에서 홍시연을 엄마라고 부르며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배지욱의 잔인한 선택이 내 심장을 무자비하게 짓이겼다.
나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홍시연은 여전히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이분께서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에요.”
“잘못 보지 않았어요.”
나는 황급히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배지욱, 이리 와!”
“싫어요!”
배지욱은 홍시연의 뒤에 숨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제 이름을 안다고 해서 제가 따라갈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홍시연과 선생님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인신매매범은 아니겠죠?”
홍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아이의 안전을 위해 직접 경찰에 신고했다.
인내심이 닳은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배지욱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말했다.
“배지욱, 네 엄마는 나야!”
“아니에요!”
배지욱은 필사적으로 홍시연의 등 뒤에 숨었다.
“우리 엄마는 이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