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밤의 고요함 속에서는 오히려 묘한 안도와 설득력이 배어 있었다. 그래서 나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 방으로 돌아오자 곽이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맨날 저런 식이예요. 꼭 제가 잘 때 와서 얘기하려고 하시죠.” “제가 대답 안 하면 저더러 벙어리라고 하시고...” 아이의 말끝이 점점 흐려지더니 목소리마저 떨리기 시작했다. “저는 아빠 뒤에 딱 붙은 짐 덩어리라고 했어요. 아빠가 저만 없으면 바로 여자 친구를 맞아들일 거라고 했고요.” 말을 잇는 순간, 곽이서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나는 급히 손수건을 꺼내 곽이서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히 말했다. “그건 사실이 아니야. 아빠가 결혼 안 하는 건 그냥 본인 마음 때문이지. 네 탓이 아니야.” “정말요?” 내 말에 곽이서는 멍하니 나를 올려다봤다. “그럼 만약 아빠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누구보다 먼저 결혼하자고 할 거야. 그러니까 네 잘못이 아니야. 알겠지?” 곽이서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나는 다시 책을 꺼내 조용히 이야기 책을 읽어주었다. 아마도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또 마음속 무거운 짐을 조금 내려놓았기 때문일까, 곽이서는 스르르 잠이 들었고 입가엔 웃음기마저 맴돌았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이서야, 넌 엄마의 소중한 보물이야. 잘 자.” ... 얼마 후, 내가 방에서 나오자 곽민재는 의외로 복도 한쪽에 서 있었다. 무슨 생각에 잠긴 듯한 그의 모습에 나는 그냥 모른 척하고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지안 씨.” 나를 낮게 부르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휙 돌렸다. “오늘 무섭진 않았습니까?” 한두 마디로 끝날 얘기는 아닌 것 같았기에 나는 곽민재 곁으로 다가가 담담히 말했다. “아니요. 괜찮았어요.” “그럼 다행입니다.” 곽민재는 시선을 허공에 둔 채, 달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서는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히 말했다. “이서가 할머니를 별로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