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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다음 날, 강지훈의 부모님이 주최한 비즈니스 연회에는 각계 유명인사들이 넘실거리고 떠들썩한 분위기에 술잔이 오갔다. 이 연회의 주요 목적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정한 그룹과의 최종 협력을 확정하는 것이었다. 서은수는 강씨 가문의 사모님으로서 화려하게 차려입고 참석했는데 놀랍게도 지하에 감금되어 있던 도승아가 강지훈의 ‘개인비서’라는 명분으로 연회장에 들어섰다. 도승아는 풀 메이크업에 이번 시즌 최신 명품 드레스를 입고서 안주인 서은수보다 더 이목을 끌었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서은수는 상대방의 의도를 바로 간파했다. 그녀는 도승아를 힐끗 보며, 대놓고 야유를 날렸다. “오늘은 그래도 사람답게 꾸몄네? 지하실에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빛을 볼 순 있겠어?” 도승아는 즉시 눈물을 글썽이며, 애처롭게 강지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지훈아...” 강지훈은 그녀를 옆에 두고 서은수에게 차갑게 쏘아붙였다. “가서 네 할 일이나 해.” 옆에 있던 강지훈의 어머니 최자현은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하며 서은수에게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남자들 일은 신경 꺼. 협력 건은 네가 계속 진행하고 있잖니. 정한 그룹은 요구가 까다로우니 오늘 반드시 협력 성사시켜야 해. 우리 집안에 망신 주지 말고!” 한 가족이 각자 속셈을 품고, 오직 이익만을 추구했다. 하지만 중병에 걸린 어머니를 생각해서, 이번 협상으로 앞으로 3년간 병원비를 지탱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서, 서은수는 머리를 푹 숙이고 밀려오는 모든 감정을 가슴 깊숙이 짓눌렀다. 연회가 절반쯤 지났을 때, 이씨 가문에 예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큰딸 이재이가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 그녀의 뒤에는 청량하고 고고한 분위기의 한 남자가 따르고 있었다. 도승아는 그가 이씨 가문의 둘째 아들 이재욱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서은수가 술잔을 들어 그를 맞이하려 할 때, 도승아가 먼저 나서서 그녀의 술잔을 빼앗으려 했다. 도승아의 시선은 이재이를 지나쳐 이재욱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 대표님, 이 잔은 제가 은수 씨를 대신해서 올릴게요.” 도승아는 이재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서은수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난 꼭 지훈이한테 보여줄 거야. 네가 할 수 있는 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더 잘 해낼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강씨 가문 사모님 자리는 내 거야. 내가 제일 잘 어울려!” ‘그래? 그렇다면 네 소원 들어줘야지 뭐.’ 서은수의 입가에 경멸의 미소가 띠었다. 도승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은수는 손에 쥔 술잔을 확 놓아버렸다. 짤그락. 술잔이 바닥에 떨어지고 레드와인이 이재이의 한정판 하이힐에 모조리 쏟아졌다. “어머, 도 비서!” 서은수가 적절한 놀라움과 난처함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조심했어야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도승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여 재빨리 쪼그려 앉았다. 그녀는 맨손으로 신발에 묻은 얼룩을 닦아내며 이재이를 올려다보더니 아양 떠는 미소를 지었다. 주변에서 곧 야유에 찬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평생 남자의 몸 아래에 깔려서 기생하던 여자가 이 바닥의 룰을 훤히 꿰뚫을 수 있다고 여긴 걸까? 순진하긴! 비즈니스 세계는 언제나 수완과 체면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렇게 비굴하게 아첨하는 것은 오히려 경멸만 살 뿐이다. 더욱이 현재 정한 그룹은 이재이가 임시로 실권을 잡고 있기에, 그녀는 처음부터 타깃을 잘못 잡고 아첨했던 것이다. 이재이는 안 그래도 구미 그룹에 대해 불만이 많았는데, 이 기회에 앙갚음하기로 했다. 그녀는 남은 샴페인을 다른 신발 코에 천천히 부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손이 미끄러졌네. 도 비서, 이것도 닦아줄 수 있지?” 도승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의도적인 모욕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야 했다. “그만해!” 이제 막 인사를 마치고 온 강지훈이 성큼 다가와 그녀를 잡아끌었다. “누가 너더러 이런 짓 하래?” 도승아가 일어나 눈물을 글썽이며 서은수를 바라보았다. “쟤가 술을 쏟지만 않았어도...” “내 탓이라고?” 서은수가 덥석 말을 자르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네가 한사코 주목받으려고 한 거잖아.” 옆에 있던 최자현은 눈을 질끈 감고 얼굴에 혐오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격 떨어진 년.” 그녀는 줄곧 서은수의 사생아라는 신분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기에, 아들이 어떤 요물을 데려오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제 발등을 찍은 격이었다. 이딴 요물 때문에 협력이 무산될지도 모르니까. 최자현이 분노하여 돌아서려 할 때, 서은수가 침착한 표정으로 비서에게 가서 정교한 신발 상자를 가져오라고 했다. 곧이어 미소를 지으며 이재이에게 상자를 건넸다. 안에는 샤넬에서 막 출시된 최신상 하이힐이 들어 있었다. “재이 씨가 이 디자인 좋아하는데 줄곧 못 구했다고 들었어요. 마침 지금 신은 신발이 더러워졌으니 이걸로 바꾸시는 게 어떨까요?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이재이는 눈썹을 치키고 신발을 받더니 마침내 얼굴에 진심 어린 미소가 띠었다. “역시 똑똑한 사람과는 대화가 즐겁다니까요.” 그녀는 강씨 가문 사람들을 죄다 싫어하지만 유독 눈앞의 냉정하고 예리한 서은수만 달리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재이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강지훈과 그의 품속에 안긴 여자를 훑어보더니 서은수를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은수 씨, 남자도 더러워지면 새로 바꿀 수 있어요. 이참에 제가 한번 깨끗하고 말썽 안 피우는 쪽으로 바꿔드릴까요?” 그녀는 옆에 있는 이재욱의 팔짱을 끼고 환하게 웃었다. “내 동생 어때요? 괜찮죠? 종일 세상만사에도 관심 없고 아직 여자친구도 없어요.” 물론 농담이지만 뭇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대꾸할 엄두가 안 났다. 이재욱은 담담한 표정으로, 전혀 거부감 없이 서 있었다. 이를 본 강지훈은 은근 긴장하며 저도 몰래 질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풋내기인데 남을 배려할 줄이나 알겠어요?” 서은수는 처음 듣는 그의 말투에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지금 이건 질투인가? 하지만 환상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말끔히 사라졌다. 강지훈이 그녀의 팔을 잡고 은근히 힘을 주며 말했다. “잊지 마. 넌 내 아내야. 우리 집안 망신 주지 마라.” 한편 제대로 망신당한 도승아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울면서 연회장을 뛰쳐나갔다. 협력은 순조롭게 성사됐지만 진정한 승자는 오직 서은수뿐이었다. 체결식에서 카메라가 눈부시게 번쩍였다. 강지훈은 굳은 표정으로 계약서에 서명했고, 서은수는 미소 짓는 얼굴로 다가와 부드럽게 말했다. “밖에서는 잉꼬부부처럼 행동하자며? 웃어야지, 활짝.” 강지훈이 고개를 들고 완벽한 가짜 미소가 피어올랐지만, 치아 사이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는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개가 주인을 물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야.” 서은수의 미소가 더욱 부드럽고 아름다워졌다. “개? 아, 네가 키우는 그 개 말하는 거야? 남의 발이나 핥기 좋아하는 푸들?” 그녀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강지훈과 시선을 똑바로 마주쳤다. “그럼 어디 한번 기대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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