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나에게 기회를 줘
“서훈이는 어릴 때부터 내 말이라면 뭐든 다 들어줬어. 사실 이번 일도 서훈이 앞에서 한번 언급했을 뿐인데, 이렇게 우연히 평가 규정이 바뀌다니.”
물론 윤소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기에 직접 주씨 가문이 뒷문을 열어줬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말투에서 느껴지는 거만함은 숨길 수조차 없었다.
이 일은 조금도 망설일 필요 없이 믿을 수 있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것은 내가 그동안 겪어온 모든 서러움을 모욕하는 것이다.
“만약 이번에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이 은솔이 너였다면 이런 우연한 기회가 생겼을까?”
윤소민은 일부러 이런 말을 꺼냈다.
“아, 깜박했네. 너는 원래 실력과 성적으로 승부하는 사람이잖아. 이런 우연한 기회는 눈여겨보지도 않겠지?”
윤소민의 이 지나치게 가식적인 모습을 보자 나는 참지 못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윤소민, 여기에는 우리밖에 없으니 연기할 필요 없어.”
말을 마친 나는 그녀 곁을 스치듯 지나쳤다. 이런데 시간을 낭비할 바에는 문제를 두 개 더 풀고 지식을 더 복습하는 게 나았다.
내가 그녀 옆을 지나가는 순간 윤소민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송은솔, 포기해. 네가 아무리 애를 써도, 서훈이는 결국 내 편이 될 테니까.”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윤소민의 목소리에 가득하던 뿌듯함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스스로 바닥에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윤소민은 손을 들어 눈물을 닦으며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윤소민의 행동을 본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도 주서훈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주서훈이 내 뒤에서 나타나 바닥에 쓰러진 윤소민을 부축해 일으키며 입술을 꽉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소민 역시 연약한 척하며 지극히 애처로워 보였다.
윤소민이 똑바로 선후 방금 일어난 일을 나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순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민아, 괜찮아? 돌아가면 꼭 병원에 가서 진료받아, 평소에 몸조심 좀 해. 평지에서 자꾸 넘어지지 않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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