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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술집을 나서자마자 허이설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이렇게 매번 용제하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윤가을이 말했다. “추다희 걔 왜 그래? 너랑 용제하 사이가 어색한 거 뻔히 알면서 합석하자고 한 건 대체 뭐야?” 허이설이 고개를 들었다. “걔 제하를 좋아해.” 그 말에 윤가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뭐?” “아까 못 봤어? 제하가 나타나자마자 눈이 반짝거리면서 계속 빤히 쳐다보는 거?” 윤가을은 잠시 멍해졌다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말 몰랐어.” 예전이었더라면 허이설도 추다희에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추다희가 용제하의 첫사랑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자꾸만 그녀에게 눈길이 갔다. “기분 풀어주려고 데리고 나왔는데 오히려 더 속상하게 했네.” 허이설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기숙사로 돌아가자. 전과 신청서 써야 해.” 윤가을이 허이설의 팔을 붙잡았다. “진짜 전과하려고? 아니, 허이설, 남자 하나 때문에 전과할 필요까지 있어? 안 좋아하면 그만이지. 이건 작은 일이 아니야. 게다가 전과하려면 과정이 엄청 까다로워. 기말고사에서 전부 우수 등급 받아야 가능하다고. 따지고 보면 참 터무니없는 규정이야. 전과하려는 건 그 전공에 소질이 없다는 건데 우수 등급을 요구하다니, 규정을 만든 사람 너무 멍청한 거 아니야?” 허이설에게 우수 등급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결정했어. 지금 돌아가서 전과 신청서 쓰고 기말고사 끝나면 다음 학기에 바로 전과할 거야.” 윤가을은 허이설이 농담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 알아챘다. “아, 너랑 헤어지기 싫어...” 허이설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기숙사 안 바꾸면 되잖아. 계속 같은 기숙사에서 지낼 거니까 괜찮아.” 윤가을은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허이설이 정말로 전과를 결심하다니. 사실 더 놀라운 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허이설이 용제하를 완전히 놓아버렸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허이설에게 다가가 불쑥 물었다. “너 지금 밀당하는 거 아니지?” 윤가을마저 이렇게 생각한다면 아마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여길 터. 허이설은 그들이 뭐라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했으니까. 남자는 없어도 되지만 삶은 계속 살아가야 했다. 이번 생에선 용제하를 멀리하여 그녀만의 삶을 제대로 살아갈 것이다. 용제하와 그 주변의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이 뭐라 생각하든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허이설은 쉬지 않고 전과 신청서를 작성했다. 다 쓴 다음 꼼꼼하게 검토까지 했다. 허이설은 밥 먹을 시간이 다 된 걸 보고는 옆에서 게임하던 윤가을에게 말했다. “가을아, 밥 먹으러 갈까? 뭐 먹고 싶어?” 윤가을의 시선은 여전히 휴대폰 화면에 향해 있었다. “나 고깃집 맛있는 데 알아. 이 판만 끝내고 가자.” 허이설은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그제야 신청서를 쓰는 사이 추다희가 보낸 문자를 봤다. 추다희가 개인톡으로 문자를 보내는 일은 드물었다. 보통 기숙사 단톡방에서 몇 마디 주고받는 정도였다. [이설아, 우리 저녁에 제하랑 밥 먹을 건데 너도 올래?] 이 문자를 보자마자 허이설은 눈살을 찌푸렸다. ‘제하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왜 나한테 묻는 건데?’ [아니, 됐어. 고마워.] 추다희의 답장이 곧바로 도착했다. [고맙긴. 너 전에 제하랑 약속 잡기 어렵다고 뭐라 했었잖아. 같이 밥 먹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허이설은 그 문자를 읽으며 멈칫했다. ‘이건 또 무슨 뜻이지? 다희가 만나자고 하면 쉽게 만나주고 난 안 만나준다는 뜻이야?’ 그녀는 더는 답장하지 않았고 마침 윤가을도 게임을 끝냈다. “가자. 고기 먹으러.” 기숙사를 나선 다음 허이설은 먼저 전과 신청서를 담임 교수 책상에 올려놓았다. 택시를 타고 번화가에 도착해 곧장 목적지인 고깃집으로 갔다. 그런데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윤가을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아쉬워. 이 집 진짜 맛있는데. 오늘 일이 있어서 문 닫았나 봐. 다음에 다시 오자.” 주변을 둘러보던 허이설이 한 음식점을 가리켰다. “저기서 카레나 먹을까?” 허이설은 한동안 카레를 먹지 않았다. 임신 준비 때문에 삼시 세끼를 엄격히 관리했기 때문이었다. 윤가을이 좋다고 대답하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가을? 허이설?” 두 사람이 팔짱을 낀 채로 동시에 긴장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추다희였다. 하경대학교 근처라 학교 밖으로 나오면 익숙한 얼굴을 마주치는 게 흔한 일이긴 했지만 추다희와 용제하가 함께 있는 건 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윤가을이 목소리를 낮춰 허이설에게 속삭였다. “뭐야? 다희랑 제하가 같이 밥을 먹어?” 그녀는 아직 허이설이 용제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무의식적으로 용제하와 허이설을 연결 지었다. “역시 내 체면 세워줄 줄 알았어, 이설아.” 추다희가 다가왔다. “여기서 얼마나 기다린 거야?” 허이설이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 “밖이 더우니까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자리 예약해 놨어.” 추다희가 허이설을 끌고 들어간 곳은 마침 허이설과 윤가을이 가려던 음식점이었다. 결국 밖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도 안에서 마주쳤을 것이다. 허이설과 윤가을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윤가을이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공짜 밥인데 안 먹으면 손해지.” 허이설이 억지 미소를 쥐어짰다. “우리 그냥 다른 데 갈까?” 바로 그때 허이설의 옆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젊고 생기 넘치는 여학생이었는데 상영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오빠, 연락처 좀...” 여학생은 수줍게 휴대폰을 두 손으로 들고 용제하 앞에 얌전히 서 있었다. 이 장면을 본 순간 허이설은 전생에 용제하를 쫓아다니던 날들이 떠올랐다. 용제하는 이성들에게 정말 인기가 많았다. 그 바람에 허이설은 질투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예쁘고 어린 여학생이 수줍게 연락처를 물어보는 장면을 숱하게 봤었다. 허이설이 질투하는 모습을 즐겼던 용제하는 일부러 여학생들의 연락처를 추가한 뒤 그녀가 하나씩 지우는 걸 지켜보곤 했다. “이설아, 내가 도와줄까?” 윤가을이 묻자 허이설은 그녀를 말렸다. “괜찮아.” 용제하를 쫓아다니던 시절 허이설은 늘 용제하의 앞에 서서 다가오는 여자들을 막았다. 용제하도 허이설의 이런 행동을 막지 않았다. 어차피 허이설이 막아줘도 여자는 끊이지 않았으니까. 허이설이 시선을 돌린 순간 용제하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향했다. 평소 이런 상황에서 항상 제일 먼저 반응한 건 허이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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