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6화

하지만 지금은 질투하거나 속상해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허이설을 쳐다보던 사람들 모두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오빠...” 여학생은 계속 애교 섞인 목소리로 용제하를 불렀다. 그러자 용제하가 시선을 늘어뜨리고 천천히 말했다. “별로 추가하고 싶지 않은데.” 거절했는데도 여학생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또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추가하고 싶어질까요?” 문상준이 팔꿈치로 엄형수를 툭 쳤다. “이 오빠한테 점이라도 쳐달라고 해. 팔자가 좋으면 추가해줄지도. 하하.” 추다희가 다가가 여학생을 절반 가린 채 말했다. “제하야, 아까 보니까 좀 적게 주문한 것 같아. 너 이 집에서 몇 번 밥 먹은 적 있지? 메뉴 좀 골라줄래?” 말을 마치고는 여학생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상영고등학교 몇 학년이야?” “아, 고3이에요...” “고3이면 공부 열심히 해야지. 올해 경쟁 엄청 심하다던데.” 추다희가 가볍게 한마디 했다. 여학생이 미처 반응하기 전에 추다희는 메뉴판을 용제하에게 내밀었다. 허이설은 가방을 내려놓고 윤가을에게 속삭였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사실은 여기 있고 싶지 않았다. 그 여학생을 보니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고 쓰렸다. 처음엔 그녀도 이렇게 용제하에게 매달리며 연락처를 따내려 했었다. 화장실로 들어온 허이설은 바깥 세면대 옆에 서서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담임 교수가 아직 신청서를 보지 못했는지 답장이 없었다. 그때 옆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방금 그 여학생이었다. 허이설은 고개를 숙이고 더 쳐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여학생이 다가와 그녀 앞에 섰다. 그녀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학생이 이렇게 물었다. “언니, 그 오빠 카톡 있죠? 저한테 공유해줄 수 있어요?” 정말로 용제하를 좋아하는 눈치였다. 용제하가 첫눈에 쉽게 반할 정도로 얼굴이 잘생긴 건 사실이었다. 허이설은 미래에 바람을 피울 그 남자를 여학생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너 사람 잘못 봤어.” “네?” “걔... 사실 남자를 좋아해.” “네?” “그래도 연락처를 원해?” “아, 아니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여학생은 휴대폰을 쥐고 후다닥 나갔다. 시간을 보니 음식이 거의 나왔을 것 같았다. 더 늦으면 눈치 보일 것 같아 휴대폰을 거두고 화장실을 나섰다. 그러다가 복도에서 용제하와 마주친 순간 허이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학생의 뒷모습이 아직 보였다. 허이설은 조금 전 그녀가 한 말을 용제하가 무조건 들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휴대폰을 꽉 쥔 채 침을 꿀꺽 삼킨 다음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여기서 뭐 해?” 용제하는 한 손에 라이터와 담배를 들고 있었다. 옆에 있는 흡연실로 가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허이설이게 고정되었다가 천천히 남자 화장실 표지판으로 옮겨졌다. “남자 찾으러 왔지. 내가 남자 좋아한다며.” 허이설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주변 공기가 순간 멈춘 듯했다. “밥 먹으러 가야겠어.” 딱딱하게 말하고는 옆으로 지나가려 했다. 그러자 용제하가 손을 들어 그녀의 길을 막았다.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데도 날 쫓아다녔어? 성전환 수술이라도 할 셈이야?” 허이설은 그의 길고 예쁜 손을 응시하다가 한 걸음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그냥 그 애가 공부에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거야. 쓸데없는 감정 때문에 수능 망치지 말라고.” 용제하가 코웃음을 쳤다. “사심이 하나도 없었던 거 맞아?” ‘사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허이설이 옆으로 지나가자 용제하는 덤덤하게 쳐다보면서 더는 막지 않고 손을 내렸다. 그녀와 장난칠 흥미를 잃은 듯 곧장 흡연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무사히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 마침 대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몰려든 터라 식당이 바빠 음식이 아직 몇 개 나오지 않았다. 다들 앉아서 계속 수다를 떨고 있었다. 허이설이 자리에 앉자마자 추다희가 물었다. “용제하 봤어?” “응.” 허이설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추다희가 궁금해하는 게 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용제하가 어디 갔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허이설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결국 추다희가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화장실 갔어? 아까 메뉴 두 개 주문하고 돌아보니까 사라졌더라고.” 허이설의 시선이 추다희에게 향했다. “남자 화장실 가보면 되잖아.” 좀 지나치게 날카로운 한마디에 옆에서 민트티를 마시던 윤가을이 사레들렸다. “콜록콜록...” 문상준이 웃으며 말했다. “남자 화장실밖에 갈 수 없지. 설마 여자 화장실 가겠어? 하하.” 옆에 있던 남자들은 여자들끼리의 대화를 지켜보며 조용히 있었다. 그러다 한 남학생이 나서서 추다희를 두둔했다. “다희가 그냥 물어본 거 가지고 왜 그렇게 날카롭게 굴어?” 그러고는 낮게 중얼거렸다. “너희들 평소에도 관계가 별로 안 좋아?” 이제는 윤가을과 허이설이 아니라 박루인이 나섰다. “무슨 소리야, 그게? 우리 사이 진짜 좋은데? 너야말로 쓸데없는 소리로 기분 상하게 하지 마.” 박루인이 기숙사장이라 이런 상황에서는 그래도 한마디 했다. 반면 추다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푹 숙였다. 허이설에게 괴롭힘이라도 당한 것처럼 속상한 척했다. 허이설은 그들을 무시하고 창밖을 내다봤다. ‘공짜로 얻어먹는 밥인데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다음엔 절대 공짜 밥 안 먹어.’ 용제하는 타이밍을 잘 맞춰 음식이 다 나올 때쯤 돌아왔다. 허이설 옆을 스쳐 지나갈 때 옅은 담배 냄새가 났다. 허이설은 고개를 더 숙이고 밥 냄새에 집중했다. 용제하의 냄새를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오래 맡지 않으면 자연스레 잊힐 거라 생각했다. 용제하가 맨 마지막에 온 바람에 추다희의 옆자리밖에 남지 않아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앉았다. 추다희는 그와 의자를 바짝 붙여 앉았다. 용제하는 소매를 반쯤 걷어 올린 채 한 손은 의자 팔걸이에,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가까이 다가가자 팔이 그에게 살짝 닿았다. 추다희는 웃으면서 부드럽고 달콤하게 말했다. “아까 그 여학생 상영고 교복 입은 거 봤어? 아직도 실감 안 나. 우리 고등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시간이 엄청 지난 느낌이야. 너 고3 때 마지막 농구 시합 기억나? 고1, 고2 애들이 수업 빼먹고 너 보러 와서 체육관이 꽉 찼었잖아.” 용제하는 고개를 돌려 추다희를 쳐다봤다. 가깝게 앉은 터라 옆에서 보면 연애 중인 커플처럼 보였다. “그날 어떤 후배가 나한테 와서 네 카톡 연락처 달라고 했는데...” 추다희가 휴대폰을 꽉 쥐었다. “네 카톡 추가 안 해서 없다고 했어. 그런데 대학교에 와서도 같은 반이 됐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녀는 용제하를 보며 말했다. “우리 꽤 인연이 있는 것 같아.”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이 정도 인연이면 얼른 추가해야지.” 허이설은 그들의 대화를 듣지 않았다. 마침 담임 교수 유진서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신청서를 봤다며 진짜로 결정한 거냐고 물었다. 허이설이 대답했다. “네, 결정했어요. 전과할래요.”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