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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 허이설은 물건을 챙기고 서한 자습실로 향했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용제하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대회 준비에 몰두해 있는 게 아니라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는 듯했다. 허이설은 그에게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다가오는 걸 본 용제하는 휴대폰을 꺼버렸다. 그 행동에 허이설은 추다희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그녀가 오니까 꺼버린 거라 생각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노트북을 열어 어젯밤 완성한 자료 일부를 용제하에게 보냈다. 용제하는 파일을 받아 훑어본 후 몇 군데 수정해 다시 허이설에게 보냈다. 두 사람은 말 한마디 없이 작업을 이어갔다. 일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 시간, 용제하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오전엔 또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지?” ‘말투가 왜 저래? 지금 날 비꼬는 거야?’ 허이설이 차갑게 대꾸했다. “없어.”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펜을 쥐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 때문에 못 왔어?” 용제하가 말했다. “내일, 모레도 똑같이 바람맞히는지 보자.” 허이설이 그를 힐끗거렸다. “이게 바람맞힌 거라고? 미리 말했잖아, 못 온다고.” 용제하가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먼저 약속 잡은 거랑 네가 나중에 약속 잡은 거, 그게 같아?” 허이설은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따지면 확실히 그녀가 용제하를 바람맞힌 셈이었다. “미안. 그럼 내가 저녁에 밥 살까?”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하니까. 용제하가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 “뭐 먹을 건데?” “네가 골라.” “그럼 지난번에 네 애인하고 갔던 그 집 가자.” 허이설이 멈칫했다. ‘애인이라니?’ “왜? 애인이 많아서 지금 어느 애인인지 생각 중이야?” 용제하는 나른하게 말하면서 허이설을 비스듬히 훑었다. 허이설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 ‘아, 오빠랑 밥 먹다가 우연히 용제하를 만났던 그날...’ 허이설은 그 오해를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 “애인이 좀 많긴 하지. 근데 그 애인이 특별해서 기억났어. 거긴 안 돼. 다른 데로 가.” 용제하가 아직 그 애인이 특별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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