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이때, 문밖에서 소란스러운 인기척이 들렸다.
“빨리 의사 불러요! 자칫 문제가 생기면 그 누구도 감당 못해요.”
곧이어 다급한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표님, 이서연 씨가 있는 별채에서 연락이 왔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네요. 거기다 약간 피도 난다니까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을 듣자 강하준은 대뜸 나를 확 밀어냈다.
허리가 화장대 모서리에 부딪히면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갑자기 배가 왜 아프대요? 당장 앞장서고,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도 모셔 오세요. 어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으로 뛰어나가 이서연이 있는 건물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도우미 김선희가 서둘러 나를 부축하며 허리를 조심스레 문질렀다.
“사모님,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어리둥절했다.
신경 쓰지 말라니?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보자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 냈다.
“옷 갈아입는 거 도와줘요. 그리고 이서연한테 가서 확인 좀 해야겠어요.”
이서연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강하준 품에 살포시 기대어 고개를 쳐든 채 울먹이고 있었다.
“내가 일부러 아프다고 한 건 아니야. 그냥 마음이 좀 불안해서... 애가 생기니까 혹시라도 푸대접받지 않을까 걱정됐거든. 네가 다른 여자랑 같이 있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한 번만 용서해줘. 단지 너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내 곁에서 떠나는 게 싫어서 그랬어.”
강하준은 그녀를 꼭 껴안고 손바닥으로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바보야, 내 아이를 가졌는데 어떻게 널 내버려 두겠어? 앞으로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길 사람들이잖아. 우리 애는 나중에 회사도 이어받아야 하는데 널 소홀히 할 리 있겠어?”
“다온은 성격이 너무 고집스럽고, 다정하고 이해심 많은 너랑 비교조차 안 돼. 솔직히 벌써 지쳤거든. 걱정하지 마, 아무도 널 대신할 수 없어.”
이서연은 그의 셔츠 깃을 꼭 움켜쥐었다.
“그럼 약속해. 매일 나랑 있어 주고 정다온이랑 아이 안 가지겠다고. 대신 내가 잔뜩 낳아줄게. 남자든 여자든 다!”
강하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피식 웃었다.
“알았어, 이 질투쟁이야. 앞으로 매일 매일 같이 있어 줄게.”
이서연은 활짝 웃으며 그의 품에 얼굴을 비볐다.
“배 한 번 만져봐. 아기도 분명 아빠가 옆에 있는 거 느낄 테니까.”
나는 손에 든 가방을 꼭 쥐고 조용히 물러났다.
불빛이 훤한 저택을 올려다보자 눈가가 시큰거렸다.
결혼식 날, 아빠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린 딸이 하나밖에 없어. 다온이를 속상하게 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당시 강하준은 눈시울을 붉히며 호언장담했다.
“만약 제가 다온이를 배신하면 패가망신하게 해주세요.”
그 말을 내뱉은 지 3년도 되지 않아 그는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가졌다.
김선희가 창백해진 내 얼굴을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서연이 무사히 출산하더라도 나중에 사모님이 낳은 아이야말로 명실상부한 강씨 가문 후계자가 될 거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어요.”
김선희는 깜짝 놀랐다.
나는 뒤돌아서 자리를 떠났다.
강하준이 이미 더럽혀진 이상 버리면 그만이었다.
어떤 것은 한 번 오염되면 다시 깨끗해질 수 없으니까.
방으로 돌아온 뒤 책상 앞에 앉아 새벽이 다 되어서야 아버지에게 암호화된 이메일을 보냈다.
[아빠, 나 강하준과 이혼했어요. 일주일 후에 찾아뵐게요.]
발송 버튼을 누르고 금고에서 계약서를 꺼내 가장 가까운 변호사 사무소로 향했다.
이혼 절차를 밟기 위해서였다.
‘강하준! 네가 먼저 날 배신했으니 이만 사라져줄게. 네 형수랑 잘살아 봐.’
...
다음 날 아침, 아직 밥도 먹지 않았는데 김선희가 문을 두드렸다.
거실로 내려가자 소파에 기대앉은 이서연과 포크로 과일을 집어서 그녀에게 먹여주는 강하준을 발견했다.
나를 보자 강하준의 손이 멈칫하더니 포크를 내려놓고 서둘러 다가왔다.
“다온아, 얼굴색이 왜 그래? 잠 제대로 못 잤어?”
윤명자가 옆에서 비꼬듯 말했다.
“임신한 것도 아닌데 잠을 못 잘 리가 있나? 우리 서연은 아이 가진 몸이라 밤새 뜬눈으로 지새웠잖니, 마음 아파 죽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