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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땅에 닿는 순간 이루나의 머릿속은 완전히 백지가 되었고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등에 이상한 움직임이 느껴지자 그제야 누군가의 몸 위에 올라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코끝을 맴도는 익숙한 숨결에 고개를 돌려 보니 서이건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다시 말해, 방금 그녀를 받아내려고 달려온 ‘바보’가 바로 서이건이었다. 넋을 잃은 이루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어안이 벙벙한 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으며 통증마저 새까맣게 잊었다. 반면, 서이건은 눈을 흘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등과 왼팔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리 2층에서 떨어졌다고 해도 45킬로가 넘는 성인이 낙하하며 가속도까지 붙은 상황이기에 그 아래에 깔린 사람은 크게 다치기 마련이었다. 혹시 제정신이 아닌 걸까? 중상을 입을 위험을 무릅쓰고도 맨손으로 그녀를 받아내다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건 씨!” 이은서가 제일 먼저 그의 곁으로 달려와 초조하게 물었다. “괜찮아요? 움직일 수 있어요? 어디 다쳤어요? 아까는 왜 그랬어요? 그냥 떨어지게 놔두지!” 곧이어 이성태와 박희연도 허둥지둥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왔다. 서이건에게 사과하랴 상태를 물어보랴 하나같이 안절부절못했다. 정작 같은 피해자인 이루나는 한쪽에 맥없이 주저앉아 있었고, 아무도 그녀의 안위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건아, 너도 참! 갑자기 왜 뛰어든 거야?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아? 머리나 급소에 맞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어? 정말 식겁했잖아!” 박희연이 투덜거렸다. 서이건이 사정을 잘 모를 것 같자 잽싸게 표정을 굳히고 사실을 왜곡하며 이루나를 몰아붙였다. “죽을 거면 혼자 조용히 죽지, 하필이면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이 난리야? 이건이가 크게 다치지 않은 걸 다행인 줄 알아. 아니었으면 너 진짜 고소당했어.” 어이없는 소리에 이루나는 어두운 표정으로 반박조차 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끔찍한 순간에 육체적인 고통까지 더해져 여전히 멍하니 얼이 빠져 있었다. 그때, 서이건이 부축하려는 사람을 밀어내고 고통을 참아가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이내 차가운 눈빛으로 이씨 가문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몸을 돌려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 제가 방금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건 살인 미수 같은데...” “어...?” 이성태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원흉, 이원호를 힐끗 바라보곤 한숨을 쉬며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이건아, 뭘 또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얘기하니.” 박희연이 곧바로 나서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사실은 말이야. 우리 남편 철부지 큰딸이 또 집에 찾아와서 행패 부렸거든. 나한테 손찌검하니까 원호가 참다못해 대신 나선 건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됐어요.” 서이건이 짜증 난 듯 그녀의 말을 끊었다. “남의 집안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없지만 어떻게 올 때마다 난장판이죠? 정말 실망이네요. 가족 분쟁을 해결하기 전까지 약혼식은 당분간 미뤄요.” 그는 이 어수선한 곳에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아 말을 마치고 쌩하니 문밖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떠나버린 데다가 서이건이 손까지 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은서는 속이 타들어 갔다. 게다가 방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루나를 구하고, 약혼을 미루겠다는 말까지 한 터라 눈빛이 고울 리 없었다.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욕설을 퍼부었다. “아까 그냥 콱 죽어버리지. 너만 없으면 우리 집안도 이렇게 시끄럽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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