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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가족 만찬이 한창인 밤, 모든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오직 임유라와 육시훈만이 자리를 비웠다. 방 안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껴안으며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육시훈이 벨트를 풀고 그녀의 몸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순간, 그는 나지막한 신음을 내며 숨을 내쉬었다. 임유라는 백옥처럼 하얀 목을 뒤로 젖히며 입술을 앙다문 채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삼키려 애썼다. “오빠, 조금만... 부드럽게 해줘. 아빠랑 엄마가 밖에 계시는데...” 문이 흔들릴 정도로 거친 숨결이 오가는 순간, 육시훈이 그녀의 목을 스치던 입술로 속삭였다. 낮고 탁한 그 목소리에는 놀림이 어려 있었다. “무서워? 들키면 내가 널 데리고 유럽으로 도망가서 결혼해버릴 거야. 어때?” 임유라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대답하지 못했지만 눈동자에는 벌써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그런 그녀를 보며 육시훈은 두 눈을 살짝 치켜뜨고 일부러 더 세게 몸을 밀어붙였다. “왜 말이 없어? 오빠를 다 손에 넣고 책임 안 질 셈이야? 그래?” 임유라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몇 년 전만 해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엽기적인 상황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의붓 오빠와 가족 만찬 자리에서 관계를 맺다니...’ 그러나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그녀는 여전히 사랑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흐느껴 대답했다. “책임져. 난 오빠랑 결혼하고 싶어.” 시계 바늘 소리가 들려왔고 긴 시간이 흐른 끝에 겨우 정사가 끝났다. 육시훈은 녹초가 되어 쓰러진 그녀를 바라보며 허리를 끌어올려 안고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속삭였다. “오늘 친구들이랑 약속 있다며? 늦겠어.” 그제야 정신이 든 그녀는 허둥지둥 욕실로 가려 했지만 육시훈이 그대로 그녀를 안고 함께 들어갔다. 욕실에서 또 한 번의 흥분을 겪은 뒤, 임유라는 간신히 옷을 차려입고 급히 문을 나섰다. 다행히 가족 만찬은 이미 끝난 뒤라 거실은 인적이 사라진 채 텅 비어 있었다. 임유라는 별장을 나서며 친구에게 늦으니 기다려달라고 전화를 걸려 했다. 그런데갑자기 귀를 찢는 엔진 소리가 공기를 가르더니 차 한 대가 미친 듯이 그녀를 향해 돌진해왔다. 피할 겨를도 없이 그녀의 몸은 공중으로 뜬 채 십여 미터를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쿠웅!” 극심한 통증이 신경을 타고 퍼져 나가며 몸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피가 흘러내려 그녀의 몸 밑에는 핏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간신히 눈을 뜨고 멀리서 달려오는 육시훈의 모습을 보았다. “유라야!” 귀엔 윙윙거리는 소리만 가득했고 시끄러운 외침과 발소리는 점점 흐릿하게 멀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둠 속에 갇힌 그녀의 의식이 잠시 맑아진 순간이 있었다. 정신이 흐릿한 가운데 그녀는 육시훈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시훈아, 네 여동생의 다리는 지금 수술하면 아직 고칠 수 있어. 정말 수술을 포기할 거야? 그럼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텐데.” 육시훈은 비웃으며 그녀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직접 사람을 시켜 차로 치게 했는데 어찌 수술까지 시키겠어? 남의 가정을 파괴한 내연녀의 딸이 이렇게 된 건 그 모녀에 주는 벌이야.” “그것도 그렇네. 하지만 네 여동생은 춤을 목숨처럼 아끼잖아. 자기가 장애인이 됐다는 걸 알면 분명히 미쳐버릴 거야. 그런데 5, 6년 동안 연애한 게 복수 때문이었다니. 그렇게 오랫동안 잠자리를 같이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다리까지 망가뜨리다니. 너도 참 잔인하네. 진심으로 마음이 움직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마음이 움직여?” 그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나는 우리 엄마가 겪었던 고통을 십 배, 백 배로 그 모녀에게 갚아주고 싶을 뿐이야.” “평생 걔를 좋아할 일 없는데 무슨 마음이 움직인다는 거야. 아, 그리고 사고 낸 운전자에게 돈을 좀 쥐어주고 오늘 일을 무덤까지 가져가게 해.”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임유라의 심장을 내리쳤다. 그녀는 상상조차 못 했다. 육시훈이 그동안 자신을 사랑한 게 아니라 복수를 위해 다가왔다는 사실을. 15살 때, 임유라는 재혼한 엄마를 따라 육씨 가문에 들어갔고, 학교에서 킹카였던 육시훈의 의붓여동생이 되었다. 성화 고등학교에는 ‘교장이 누군지 몰라도 육시훈을 모를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전교 여학생들이 모두 몰래 그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는데 그 안에는 임유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남모르게 육시훈을 짝사랑했지만 가까워질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둘이 남매가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도 실망은 했지만 여전히 그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쌀쌀맞게 굴었다. 그렇게 그녀는 18살이 되었고, 육시훈이 졸업하던 날 밤 그녀는 그를 마중 나갔다가 약에 취해 정신이 흐려진 그를 발견했다. 병원에 데려가려던 순간, 차 안에서 갑자기 육시훈이 그녀를 잡았다. 그날 밤이 처음이었던 두 사람은 그 후로 관계는 완전히 바뀌었다. 육시훈은 그 맛에 중독된 듯 차갑던 태도를 접고 그녀를 끊임없이 자신의 침대로 불러들였다. 그녀의 이름을 귀에 속삭이며 밤새도록 그녀와 뒤엉켰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착각으로 임유라는 그 순간들에 완전히 빠져버린 채 몸과 마음을 모두 내던지듯 그에게 바쳤다. 6년 동안 두 사람은 가족들 몰래 사랑을 속삭였다. 그들은 식탁 아래에서 손을 잡았고 거실과 부엌에서 몰래 키스를 나누었으며, 매일 밤 서로를 탐욕스럽게 차지하곤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철저히 계획된 복수극이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녀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휩싸인 채 분노가 치밀어 올라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임유라는 여전히 병원에 누워 있었고 육시훈은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눈을 뜨자마자 육시훈은 급히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미안해. 유라야, 오빠가 널 제대로 지켜주지 못해서 이렇게 심하게 다쳤어. 앞으로는 걸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슬퍼하지 마. 오빠가 약속할게. 반드시 네 다리를 치료할 방법을 찾아낼 거야.” 예전 같았으면 임유라는 이 충격적인 소식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을 테고, 아무런 의심 없이 그를 믿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저 퀭한 눈으로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그의 연기를 차갑게 바라볼 뿐이었다. 초췌한 얼굴, 핏발 선 두 눈, 그리고 슬픔에 젖은 듯한 그의 눈빛은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모습이 이제 완전히 낯설게 느껴졌다. 육시훈도 그녀의 이상한 상태를 금세 눈치채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유라야, 왜 말이 없어? 아파? 오빠한테 말해봐. 어디가 아파?” ‘아파... 육시훈, 정말... 너무 아파.’ 그녀가 입을 열지 않자 육시훈은 마침내 초조해져 서둘러 의사를 부르러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임유라는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었다.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고통과 절망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육시훈, 6년이야. 넌 무려 날 6년이나 속였어. 6년 동안이나 복수해왔다니.’ 고통에 몸부림치던 임유라의 방에 은선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상처투성이인 딸의 모습을 본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 엄마 앞에서 더는 방어할 필요 없었던 임유라는 그대로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모녀는 한참 동안 부둥켜안고 울었다. 은선희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며 목이 메인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유라야, 두려워하지 마. 네 다리가 완전히 가망 없는 건 아니야.” “네가 어릴 때 결혼을 약속했다가 십여 년 전에 이민 간 준표 오빠 기억나? 의학을 전공해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정형외과 분야 전문가래. 내가 연락해 봤는데 치료할 수 있다는 확신이 크더라고.” “네가 남자친구를 포기 못 하고 어릴 적에 한 결혼 약속을 거부하는 것도 알아. 하지만 지금은 다리 치료가 가장 중요해. 이번 한 번만 엄마 말 들어주면 안 될까?”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에 임유라는 심장이 떨렸다. ‘이 다리가 정말로 나을 수 있는 걸까.’ 그녀는 눈물을 닦아냈다. 고목처럼 말라붙었던 심장에 서서히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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