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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은선희는 그녀가 이렇게 쉽게 동의할 줄 몰랐다. “이번엔 아주 오래 갈 수도 있어. 정말 각오했어?” “다리만 낫는다면 오래 걸려도 상관없어요.” 은선희는 마음에 걸렸던 돌을 내려놓은 듯 안도하며 바로 비자 신청할 서류를 챙기려 일어섰다. 임유라가 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다. “엄마, 제가 외국에 가는 일을 일단 오빠한텐 말하지 말아요...” 그 순간, 병실 문이 열리며 육시훈이 들어왔다. “나한테 말하지 말아야 할 일이 뭔데?” 은선희는 서둘러 자리를 떴고, 임유라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 부은 눈을 감췄다. “별거 아니야. 외할머니 집안 일이랑 관련된 거야.” 다행히 육시훈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열여섯 명의 정형외과 전문의들을 불러들여 그녀의 다리 상처를 꼼꼼히 진찰하게 했다. 상처를 확인한 의사들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최적의 치료 시기를 놓쳐서... 완치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듣자 육시훈은 그녀보다 더 비통해 보이는 표정을 지은 채 임유라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유라야, 네가 평생 못 일어난다 해도 오빠는 평생 돌봐줄 거야. 네가 어떤 모습이 되든 난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유라야, 조금만 더 기다려줘. 모두에게 우리 관계를 공개하고 결혼하자.” 이런 말을 임유라는 지난 몇 년간 수십 번도 넘게 들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도 그녀는 설렘 대신 오직 비웃음만이 치밀어 올랐다. 더는 연기할 힘도 없던 그녀는 피곤하다는 말만 남기고 눈을 감았다. 육시훈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이불을 정리해 주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떠다 주며 정성스레 돌봤다. 마침 문을 열고 들어온 간호사는 그 모습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키도 크고 잘생기고 여자친구까지 이렇게 잘 챙겨주는 남자친구는 정말 보기 드물어요.” 임유라는 그 말을 들으며 다시금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여자친구의 다리를 차로 들이받을 만큼 잔인한 남자친구도 정말 보기 드물 텐데.' 임유라는 병원에서 5일을 보냈는데 그동안 육시훈은 한 발짝도 떠나지 않고 병실을 지켰다. 검사부터 약을 갈아주고, 삼시 세끼를 챙겨주는 등 모든 게 그의 손길 하나하나에 정성스럽게 배려됐다. 그런데 퇴원 당일 그는 예상치 못하게 사라졌다. 은선희가 임유라를 차에 태워 집으로 향하며 이유를 설명했다. “유라야, 아저씨 친구분이 오신다고 해서... 아침부터 시훈이가 집에서 손님을 접대하느라 바쁘대. 오빠가 마중 못 온 걸 섭섭해하지 마. 어차피 피가 섞인 것도 아닌데. 우리 모녀를 이렇게나마 받아줬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야.” 어머니의 그 말에 임유라는 또다시 눈가가 붉어졌다. ‘받아줬다고? 아니... 단 한순간도... 진심으로 받아준 적이 없는데.’ 그래서 그는 일부러 그녀에게 복수하고, 그녀와 연애하며 농락하고, 그녀의 다리를 망가뜨리고 인생을 망치려 했던 것이다. 무려 6년 동안이나 그녀는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고 조금도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었지만 은선희에게 들킬까 봐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차가 집 앞에 멈춰 선 후 은선희는 딸을 휠체어에 태우며 해외 치료 진행 상황을 이야기했다. “해외로 가는 절차는 이미 알아봤어. 비자는 열흘 정도 후에 나올 것 같아. 유라야, 넌 꼭 나을 수 있을 거야.” 그 소식을 들었지만 임유라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마치 이미 영혼을 잃어버린 꼭두각시 인형 같았다. 그러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육시훈 옆에 앉아 있는 여자를 보고서야 비로소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그들이 돌아오는 걸 본 육상철은 급히 일어나 소개했다. “유라야, 왔어? 이쪽은 내 친구 딸 소은하야. 시훈이랑 함께 자란 사이인데 이번에 경인시로 일하러 와서 특별히 집에 들렀어.” 소은하를 처음 본 순간 임유라는 그녀가 누군지 알았다. 육시훈의 침대맡 탁자에 몇 년째 놓여 있던 그 사진 속 여자였다. 임유라는 그 사진을 수없이 봤고 수없이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한 가지뿐이었다. “어릴 적 친구야.” 하지만 지금 직접 보니 육시훈이 또 자신을 속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시선이 소은하에게 달라붙은 채로 떨어지지 않았다. 임유라는 이런 분위기를 견딜 수 없어 휠체어를 돌려 침실로 가려 했지만 소은하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유라 씨, 시훈에게 들었는데 최근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면서요? 많이 심각해요? 휠체어까지 타게 될 만큼?" 거실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육시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임유라는 빨갛게 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교통사고 나서 두 다리 다 못 쓰게 됐어요. 일어설 수 없게 됐다고요.” 소은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요, 분명 나아질 거예요. 저도 어릴 때 춤추다가 다리 부러져서 시훈이 업고 병원에 갔던 적 있어요. 그때 시훈은 내가 무대에서 다시 빛날 수 없을까봐 걱정해서 정말 죽을 듯이 뛰었죠. 아저씨, 그때 일 기억나요?” 육상철도 임유라가 상처받을까 봐 급히 말을 이었다. “아... 그래. 너희 둘 어릴 때는 항상 붙어 다녔지. 네 아버지랑 내가 종종 장난처럼 사돈 맺자고 할 정도였어. 우리가 후에 경인시로 이사 가면서 그 이야기도 흐지부지됐지.” 육시훈이 갑자기 말을 끊었다. “아버지,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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