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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임유라는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꽉 쥐었다. 아저씨가 그들 두 사람을 이어주려 한다는 걸 그녀는 알아들었다. 아들이 빨리 연애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길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도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육시훈이 소은하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런 농담을 들었을 때 분명히 부정하며 관심 없다는 선에서 정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건 육시훈이 여전히 소은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만 임유라 앞에서 한동안 변함없는 사랑을 연기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식사라는 핑계로 화제를 돌린 것이다. 식사하는 동안 육시훈은 소은하의 곁에 앉아 수시로 그녀에게 반찬을 얹어주었다. “너 마늘 싫어하잖아. 미리 아줌마께 말해서 오늘 음식엔 마늘 안 넣었어. 네가 가장 좋아하는 새우야, 맛 좀 봐. 아침에 내가 직접 고른 거야.” .”"시훈아, 네가 얘기할 때마다 집안 아줌마의 요리 실력이 좋다고 했잖아. 몇 년째 맛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먹어보네. 넌 여전히 어릴 때처럼 내게 새우까지 다 까주는구나...” 임유라는 묵묵히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은하가 일어나 작별 인사를 하자 육시훈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배웅했다. 그가 차를 몰고 떠나는 것을 본 후에야 임유라는 홀로 휠체어를 밀며 그의 서재로 들어갔다. 예전에 집에 아무도 없을 때 그는 종종 그녀를 데리고 집 안 구석구석에서 키스하고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었지만 유독 이곳에는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서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고, 들어와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벽 한 면에 소은하와 관련된 사진과 수많은 그림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찬장에는 정성껏 보관된 많은 선물이 있었고, 각각의 선물에는 연도, 기념일, 그리고 소은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책상 서랍에는 천 통이 넘는 편지가 숨겨져 있었는데 절반은 소은하가 보낸 것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가 쓴 보내지 않은 연애편지였다. 편지 속 글자 하나하나에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일기장 속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악한 증오가 페이지마다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오늘은 그년 엄마가 만든 밥을 먹었더니 너무 구역질 나서 새벽 3시까지 토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비까지 쏟아지는 밤중에 약을 사러 나갔더라. 40도 고열에 시달리던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낮에 일부러 그년이 과감하지 않다고 했더니 밤에 야한 속옷을 입고 내 침대에 기어들어 왔다. 역시 그년 엄마처럼 천박하고 음탕한 년이다.] [오늘 싸우다가 다쳤는데 그년을 위해 나서다가 그랬다고 거짓말했더니, 순진하게도 피를 기절할 때까지 수혈해 줬다. 정말 한심할 정도로 멍청한 년이다.] 이 모든 시간 동안 임유라는 오직 육시훈의 마음에 닿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의 작은 관심조차도 간절히 바라며 모든 것을 내던지고 헌신했고, 한순간도 후회한 적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은 단지 역겨운 사생팬에 불과했다. 겨우 몇 페이지를 넘겼는데 임유라는 숨이 막혀 왔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그녀의 심장을 잡아 뜯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아파... 너무 아파...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플 수 있는 걸까.’ 손을 꽉 움켜쥐는 바람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스며 나오고, 입술을 깨물어 피 맛이 진해져도 그녀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방 안이었다. 문득 육시훈이 조용히 다가와 긴 팔로 그녀를 끌어안는 게 느껴졌다. “왜 울어? 혹시... 질투하는 거야? 유라야, 나랑 은하는 정말 그냥 친구 사이야. 아버지가 말한 건 다 어릴 때 장난 같은 얘기였어.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 줄래?” 그는 달래듯 설명하며 그녀의 입술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닿는 순간, 임유라는 정신이 번쩍 들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는데 얼굴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놔줘... 난 이제 이런 꼴인데 그만 놔줘...” ‘육시훈, 제발... 날 그만 놔줘...' 그녀가 이토록 괴로워하는 모습을 처음 본 육시훈은 눈빛이 굳어지며, 가슴 어딘가가 허전해져 황급히 그녀를 더욱 꽉 안으며 다정하게 달랬다. “알았어, 알았어. 오빠가 안 할게. 네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아 이런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걸 깜빡했어. 이런 일을 하면 안 되는데...” “요즘 남매끼리 결혼 가능한 나라들을 찾아봤어. 어디가 마음에 드는지 보고 함께 가서 결혼하자. 응?” 휴대폰 화면에 나열된 나라 목록을 보며 임유라는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한기를 느꼈다.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온몸을 떨며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 뿐이었다. 임유라는 자신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몰랐다. 육시훈은 그저 그녀가 아직 하반신 마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며 그녀를 끌어안고 계속해서 달래주었다. 아침에 깨어났을 때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 두 눈이 붉게 부은 채 세수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육시훈이 직접 요리한 아침 식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라야, 네가 가장 좋아하는 해물 죽이야. 주스도 방금 갈아낸 건데 맛 좀 볼래?” 하지만 임유라는 따뜻한 아침밥을 바라보며 그의 일기장 속 내용이 눈앞을 어지럽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됐어... 나 오늘 극장에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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