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0화
영녕궁.
숙빈은 책상 앞에 앉아 음울한 얼굴로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주위엔 무거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고 양 옆에 늘어서 있는 궁녀들은 모두 고개를 떨군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평소 숙빈과 가장 가까운 청심과 홍윤마저도 입을 꾹 다문 채 감히 말을 붙이지 못했다.
“기연아.”
갑자기 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양현무가 성큼성큼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이건 내가 금성에서 특별히 가져오게 한 비취다. 심심풀이로나 삼거라.”
말을 하며, 그는 손에 들고 온 함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숙빈은 한숨만 내쉴 뿐, 아무 대꾸도 없었다.
양현무는 잠시 멈칫하더니 주변을 둘러보았고 곧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이내 궁인들에게 모두 물러가라고 지시했다.
“며칠 전에 네가 사람을 시켜 나한테 편지를 보냈더구나. 마침 그때 내가 군영을 순찰할 예정이어서 며칠 미루게 됐지. 이리되면 안 되겠다 싶어 경성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너부터 찾은 거다.”
유일한 여동생인지라 양현무는 숙빈과 이야기할 때면 평소의 성정도 누그러들곤 했다.
“궁에서 힘든 일이 있는 거냐? 누가 너를 괴롭히기라도 했느냐?”
숙빈이 기가 꺾인 모습을 보자 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늘 그런 일들이지요. 강원주가 요사스러운 수작에 능해서 폐하를 홀렸지 뭐예요. 요즘은 그 계집 말고는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시는 모양이에요. 이제 이 영녕궁은 허울뿐인 껍데기일 뿐이에요.”
숙빈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흥, 그래서 구월국과의 화친 이야기도 진전이 없는 거였군. 온갖 향락에 빠져 있느라 바빴던 거지. 요녀 하나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하다니,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지!”
양현무는 얼굴이 시커멓게 질려 소리쳤다.
“당장 가서 따져야겠다.”
점점 격분한 그는 일어서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오라버니, 제발 그러지 마세요!”
숙빈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황제가 예전에 장군부까지 직접 찾아와 아버지께 청혼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널 궁에 들여보낼 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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