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화

그의 손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일을 마친 후 돈을 지불하면 그녀는 그를 무엇으로 생각할까? 남자가 냉담한 얼굴을 하고 발코니로 성큼성큼 걸어가니 과연 창문이 열려 있었다. 여기는 층 간격이 높아서 3층이 4층 높이일 텐데 그녀는 어떻게 뛰어내렸을까? 그가 그렇게 무서웠다고?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칠 만큼? 창밖에는 바람이 불어 시원하지만 남자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사악한 불은 끄지 못하였다. 이 여인은 만 원으로 그를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일이 끝난 후에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쳤다... 잡히기만 해봐라! ...... 소희가 미터기 위로 재채기를 하자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물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이렇게 예쁘게 생겨서 홀딱 젖어있다니, 딱 봐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소희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기사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학생이죠? 밖에 혼자 다닐 때 더 조심해야 되요.” “네, 감사합니다. 기사님.” 소희는 대답하고 휴대폰을 꺼내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천위 호텔의 7시와 9시경에 내가 찍힌 CCTV 기록은 모두 없애!” “ok!” 상대방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시에 따랐다. 남자의 귀에 거슬리는 말이 다시 귓가에 울려 퍼졌고, 이제 소희는 오늘 임구택과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더 고민할 필요 없이, 임구택이 그녀가 왔다는 사실을 모르게만 하고 싶었다. 운해로에서 내린 소희는 뒷좌석을 적시는 바람에 택시비를 두 배로 지불했다. 별장으로 돌아온 뒤, 하인은 소희의 젖은 옷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작은 아씨, 무슨 일이에요?” “일이 좀 있었어요, 일단 올라가서 샤워부터 할게요.”소희는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물 준비해 드릴게요.”하녀는 더 묻지 않은 채 위층으로 올라가 준비했다. 몇 분 후 소희는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근 채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셔 물을 머리까지 파묻고 오늘 밤에 있었던 일을 잊으려 했다. 목욕을 마치고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하녀가 머리를 말려주고 있을 때 소정인에게 전화가 왔다. 소희는 하녀를 내보내고 베란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가 연결되자 소정인은 다급하게 물었다. “소희야, 어디야? 임 대표님 만났어?” 소희의 말투엔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겨있었다. “아버지, 제가 임 대표와 어울리지 못할까 봐 약을 타신 거예요?” 소정인은 어리둥절하였다. “무슨 말이야, 약을? 내가 누구한테 약을 줘? 나 아니야!” “아니라고요? 소희는 계속해서 말하였다. “그럼 왜 아버지는 분명 임구택의 비서와 아홉 시에 약속을 잡았는데 왜 저한테는 일곱 시라고 하셨어요?” 전화기에선 침묵만 흘렀고, 소희는 전화를 끊으려고 하였다 “소희야!” 전화기에서 갑자기 다급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정인은 죄책감을 보이며 대답했다. “이번 일은 내가 잘못했다. 나는 네가 임 대표를 일찍 만나길 바랐어. 너희 둘이 단둘이 있으면 결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거 같아서 그랬다.” 그가 대뜸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래?” 소희는 소정인의 진심 어린 말투에 주목했다. “진짜 아버지, 아니에요?” 소정인은 즉각 대답했다. “당연히 아니지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이런 상스러운 수법으로 내 딸을 이용하진 않을 거야!” 소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정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희야, 괜찮지?” 소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저 임구택 못 만났어요.” 소정인 역시 중간 사정에 대해 자세히 묻지도 못한 채 소희에게 사과했다. “어쨌든 아빠가 미안해, 다시는 안 만나게 할게, 산속에 있는 별장에 있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아빠가 데리러 갈게.” 소희는 온화하게 대답했다. “이미 2년 넘게 살고 있는데 몇 달 더 산다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 여기 꽤 좋아해요.” 이 별장인 임구택의 개인 재산이다, 결혼하자마자 이사 와서 거의 3년 동안 살고 있다. 소정인은 위로하며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몇 달만 더 살면 3년이 되니까 내가 직접 데리러 갈게. 아 참...” “이번 주 토요일 네 엄마 생일이니 집으로 와, 지난번에 네가 왔을 때 한 말은 고의가 아니야, 엄마도 많이 후회 중이다, 다만 자존심 때문에 사과하지 않는 것뿐이야.” “이번 주 토요일 오전에 수업이 있으니 수업을 마치고 제가 알아서 갈게요.” “그래,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렴.” 전화를 끊고 소희는 잠시 생각한 뒤 다시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봄 시즌에 맞는 목걸이와 귀걸이 신상으로 준비해 주세요, 이틀 뒤에 찾으러 갈게요.” 소희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오늘 일을 생각하니 어둠 속의 장면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그녀는 머리를 파묻고 마음속엔 화난 건지 미워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듯한 감정이 피어났다. 밤 11시에 임구택이 천위 호텔을 떠날 때 비서가 그의 뒤를 따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천거의 부사장 이해창입니다. 원래 오늘 자신이 데리고 온 여자 파트너에게 약을 쓰려고 했는데, 무슨 이유로 술잔이 사장님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답니다. 이해창은 무서운 나머지 강성을 탈출해 해성으로 갔습니다.” 임구택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이미 도망친 이상 영원히 돌아오지 않게 해!” 비서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임씨 가문 고택에 돌아온 지금은 이미 새벽이었다. 임씨 가문 첫째 부부는 딸과 아들만 남겨둔 채 부모님과 함께 런던 경제 세미나에 참석하러 갔다. 딸과 아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임구택은 곧바로 3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한 뒤 가운을 두를 채 베란다의 등나무 의자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탁자 위에 놓았다. 담뱃불은 달빛 아래서 희미하게 꺼지고 임구택의 젖은 머리카락은 이마에 드리워졌다. 어두운 빛 아래 그의 얼굴의 윤곽은 더욱 깊고 우아하게 보였다. 그 여자 생각이 났다. 욕실에서 그는 그녀의 불안을 알아차렸고 그녀를 다치게 할까 봐 오랫동안 키스를 했다. 그녀가 대답하고 나서야 그는 한걸음 더 움직였다 그녀는 그의 팔을 잡고 황급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당시 그는 혼란스러워서 지금은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불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임구택은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만졌다. 이미 물에 젖은 상태였다. 요즘은 거의 휴대폰 결제가 상용화되어있는데 누가 현금을 들고 다닐까? 그녀는 왜 그의 방에 나타난 거지? 그녀는 도대체 누구일까? 임구택은 갑자기 궁금해졌다. 핸드폰을 든 임구택은 전화를 걸었다. “오늘 밤 3층에서 뛰어내린 여자 찾아봐!” “네!”비서 명우는 명령만 받을 뿐 쓸데없는 말은 한 적이 없다. 다음날 오전 수업을 마친 소희는 장학금 신청 서류를 정리해서 사무실로 보내라는 조교의 전화를 받았다. 소희가 정리를 마친 후 아직 출발하지 않았을 때 다시 조교의 메시지를 받았다. ‘소희야, 나 급한 일이 있어서 9층 회의실에 가야 해, 네가 직접 가져와.’ 소희는 답장한 뒤 사무실 쪽으로 향했다. 사무실 밖 도로에 검은색 벤틀리가 서 있었다. 소희가 막 걸어가려는 찰나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 소희는 남자의 옆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렸다. 어젯밤에 불을 켜고 있지 않아서 임구택이 그녀를 모를 수도 있지만 그녀는 그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차가 떠나고 남자도 방향을 틀어 사무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후에야 소희는 다시 길을 걸었다. 모둥이를 돌자 남자가 서서 전화하는 것을 보고 소희도 멈춰 서서 고개를 숙이는 척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임구택은 이미 멀어졌고, 소희는 숨을 크게 들이 마시면서 임구택이 어떻게 여기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남자는 엘리베이터로 들어가고 있었고 소희는 걸음을 늦추며 엘리베이터가 닫히기를 기다렸다. 그녀의 손이 엘리베이터 버튼 위에 놓이자 이미 닫혔던 엘리베이터가 다시 열렸다. 소희는 고개를 들어 미처 대비하지 못한 채 남자의 냉담한 눈빛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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