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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4화

유정은 눈을 크게 뜨며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는데, 이게 진짜인지 환각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안성은 그야말로 충격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안성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눈앞의 이 강압적인 남자를 믿기지 않는 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유정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쪽은 안성이었고, 그는 머쓱하게 자리를 떠나버렸다. 유정은 힘이 빠진 채, 철제 난간에 몸을 기대 간신히 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녀는 백림의 셔츠를 움켜쥐며 밀쳐내려 했지만, 그의 입맞춤이 너무 강렬해 아무 힘도 쓸 수 없었다. 백림의 키스는 능숙하고 치밀했다. 마치 재빠른 물고기처럼 혀가 유정의 입안에 파고들어,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고, 파장을 만들어냈다. 한참이 지나서야 백림이 입술을 떼었고, 두 손은 난간을 짚은 채 그녀를 포위하듯 감쌌다. 남자의 눈동자는 깊고 어두웠고, 코끝에 걸린 숨결이 낮고 부드럽게 들렸다. “술 종류만 해도 세 가지는 마셨더라. 기분 좋아서 그런 거야, 아니면 나빠서 그런 거야?” 유정의 입술은 키스의 흔적으로 붉게 물들었고, 눈엔 촉촉한 물기가 맺혔으며, 가볍게 숨을 몰아쉬었다. “조백림, 너 좀 심한 거 아니야?” 백림은 입꼬리에 묘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자기 약혼녀를 노리는 남자 앞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건, 내 권리야.” 유정은 기가 막혀 반박했다. “무슨 약혼녀를 노려? 그 사람은 우리 회사 직원이야!” 백림은 한 손을 유정의 허리에 감으며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정아, 저 남자가 무슨 생각하는지 너보다 내가 더 잘 알걸?” 백림의 손바닥은 따뜻했고, 유정의 숨결은 잠시 흐트러졌다.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리며, 입술에는 은근한 농염함이 맴돌았다. 그런 유정을 바라보는 백림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고, 시선은 그녀의 눈썹, 눈, 그리고 살짝 열린 입술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러다가 백림은 다시 고개를 숙였지만, 그의 입술이 유정의 것에 닿기 직전 유정은 갑자기 무릎을 들어 올려 강하게 백림의 아랫배를 찼다. 백림은 유정의 눈빛이 바뀌는 순간 방어할 준비를 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고 그대로 한 발짝 물러서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꼬마 요정, 지금 약혼자 살인미수 하려고 그래?” 유정은 다시 발을 들며 외쳤다. “그 별명으로 날 부르지 마!” 백림은 이번에는 민첩하게 피하며 말했다. “또 찰 거야? 그렇게 걷어차다 고장 나면, 너 진짜 후회하게 될 텐데?” 유정은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 “고장이 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거든. 왜냐면 어차피 쓸 일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백림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고개를 당당히 치켜들고 사뿐사뿐 걸어 나갔다. 그리고 백림은 그 자리에 서서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백림을 한방 먹이고 난 유정은 기분이 상쾌했다. 조금 전까지 메일 때문에 마음이 불안정했는데, 지금은 씻은 듯이 개운했다. 그날 밤, 유정은 평소보다 한 시간 먼저 퇴근해 집에 돌아왔다.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책상 앞에 앉아 다시 그 메일을 열었다. 메일에 적힌 연락처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동안, 유정은 왠지 모르게 긴장됐다. 이 전화로, 유정은 다시 펜을 들게 될지도 모른다. 오래전 가슴에 묻어두었던 그 열정과 꿈을 다시 꺼내게 될지도. ‘주준은 어떤 사람일까?’ 유정의 그림체는 노련하면서도 무거운 감정이 깃들어 있었고, 인류 종말을 소재로 한 작품에는 세상의 끝을 받아들이는 냉철함이 있었다. 이야기의 틀도 거대하고, 콘티 하나하나가 이야기와 절묘하게 연결된 천재적 작가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은퇴한 교수쯤 되는 나이일 거라고 추측했다. 시간도 있고, 인생도 겪은 이만이 그런 깊이를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신호음이 울리고, 이윽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유정은 살짝 놀란 눈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목소리가 꽤 젊네?’ 유정은 얼른 대답했다. “저, 칠성이에요.” 그쪽은 잠시 멈칫하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최소한 사흘은 기다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올 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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