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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6화

며칠 동안 유정은 더 바빠졌다. 회사에선 새 프로젝트 때문에 정신이 없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두 시간씩 만화 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힘들기는 했지만, 그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전보다 훨씬 더 충만함을 느꼈다. 특히 밤이 깊어 조용해질 때면, 온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두 시간이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는 것 같았다. 주준 역시 본업이 따로 있었기에 만화는 부업이었다. 두 사람은 바쁜 와중에도 시차가 비슷했고, 며칠간의 협업을 거치며 점점 호흡이 맞아갔다. 아이디어 하나만 던져도 바로 공감이 통하고, 감각이 맞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유정은 설렘을 느꼈다. 목요일, 유정은 퇴근 후 1층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이른 시간에 귀가했다. 낮에 떠올린 인물 구상을 그림으로 옮기려던 참이었다. 막 펜을 잡은 순간, 유안성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안성의 목소리엔 조심스러운 공손함이 담겨 있었다. [지금 댁에 계세요? 서명받아야 할 문서가 하나 있어서요.] 유정은 되물었다. “급한 건가요?” [네, 꽤 급해요.] “그럼 제가 회사로 갈게요.” 그러자 안성은 급히 말했다.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주소만 알려주시면 제가 찾아뵐게요. 지나가는 길이라서요, 민폐 끼치지 않을게요.] 유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집 주소를 알려줬다. “좋아요.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기다리는 동안, 유정은 인물 설정을 다듬고 주준에게 작업 파일을 전송했다. 30분쯤 지나 안성이 도착했다. 손에는 과일이 담긴 백까지 들고 있었다. 유정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이런 건 안 가져오셔도 되는데요.” “집 방문은 처음이라 예의상 준비했죠.” 안성은 집 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여긴 평소에 안 사세요?” “두 달 정도 바빠서요. 일하는 곳이랑 가까운 이쪽으로 옮겨 왔어요.” 유정은 그렇게 설명하며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문서 어디 있죠?” 안성은 가방에서 문서를 꺼내며 말했다. “이거 먼저 확인하시고요. 혹시 시간 되시면 몇 가지는 직접 여쭤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요.” “괜찮아요. 같이 보죠.” 유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앉으려던 찰나,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유정은 조백림이 왔나하고 생각했다. ‘초인정도 누르다니, 오늘따라 예의 바르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을 여는데, 뜻밖에도 문 앞엔 정서니가 서 있었다. 서니 역시 놀란 눈으로 유정을 쳐다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유정 언니, 아직도 우리 사촌 오빠 집에 있어요?” 서니는 과장되게 눈을 부릅떴다. “혹시 같이 살아요? 동거 중인 거예요?” 유정은 또렷한 눈매로 고요히 대답했다. “아니요. 임시로 집을 빌려 쓰고 있어요.” 서니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어갔다. “언니는 집은 없어요? 왜 하필 우리 오빠 집에서 지내요?” 그러면서 서니는 이미 벌써 안으로 들어왔다. 유정은 태연하게 웃으며 맞받아쳤다. “약혼자의 집이니까. 오히려 더 안심돼서요.” 본전도 못 찾은 서니는 말문이 막혀 얼굴이 굳었다. 그러고는 거실에 앉아 있는 안성을 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안성은 앉지도 못한 채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서니는 그를 바라보며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유정에게 물었다. “이 사람 뭐예요? 언니가 숨겨두고 만나는 남자예요?” 유정은 할 말을 잠시 잃었다. 서니는 백림의 못 말리는 사촌 여동생이었다. 쉽게 놀라고 아무렇지 않게 마음대로 떠들고, 남 얘기하기 좋아하고,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못하는 그런 철딱서니였다. 그래서 유정은 지금 당장이라도 실로 입과 눈을 꿰매고 싶었으나,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회사 직원이에요. 일 때문에 온 거예요.” 안성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잔뜩 긴장해서 꼿꼿하게 서 있었다.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말 그대로 얼어붙은 상태였다. 서니는 둘을 번갈아 훑어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남녀 단둘이, 문까지 닫고, 뭐 했는지 누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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