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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10화

해가 저물고, 희미한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조백림은 짙은 눈빛으로 유정을 바라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우린 분명 잘 지내고 있었잖아. 왜 갑자기 헤어지자는 거야?” 유정은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우린 원래 계약 관계였고, 언제든 헤어질 수 있었어. 지금 내가 그만두고 싶을 뿐이야.” 백림의 검은 눈동자는 얼어붙은 호수처럼 깊고 무거웠다. 남자는 억눌린 분노를 내비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관계가 아직도 계약이라고 생각해?” 유정은 비웃듯 웃었다. “그러면 뭔데? 내가 너한테 정식으로 사귀자고 한 적 있었어?” 백림의 가슴 깊은 곳이 툭 꺼졌다. 남자의 눈엔 서늘한 통증이 번졌고,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헤어질 수 있어. 하지만 이유는 알아야겠어.” 분명 백림이 해성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돌아오자마자, 모든 게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렸다! 그랬기에 백림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유정은 시선을 내리깔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유는 없어. 이런 관계는 서로 시간 낭비야. 의미 없어.” 백림의 눈에 일순 빛이 스쳤고, 급히 말을 이었다. “시간 낭비 아니야. 우리 결혼하자. 언제든 할 수 있어.” 그러나 유정은 고개를 들고는 싸늘하게 받아쳤다. “조백림. 정말 내가 말을 직설적으로 해야 알아듣겠어?” “나, 너랑 결혼할 생각 없어. 그러니까 더는 네게 시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아. 이쯤에서 끝내자. 처음에 약속했던 대로, 쿨하게 보내줘.” 백림의 눈빛에서 마지막 희망의 빛이 꺼져갔다. 남자는 허공을 응시하듯 허탈한 얼굴로 유정을 바라보았다. “난 이해가 안 돼. 정말로 모르겠어.” 비록 명확히 교제 중이라 하지 않았지만, 그간 두 사람은 마치 연인처럼 함께했고,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를 아꼈다. 백림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은 통하고 있다고 믿었고, 이미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모든 게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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