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64화
유정은 백림을 쳐다보지도 않고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으려던 순간, 힘이 걸려 닫히지 않았다. 뒤돌아보니 백림이 손바닥으로 문을 막은 채 잔잔히 웃고 있었다.
“꿀물이라도 끓여 줄까?”
유정은 차갑게 대답했다.
“필요 없어.”
그러나 백림은 문을 놓지 않았고, 잘생긴 얼굴은 변함없이 부드러웠다.
“사실 부탁이 하나 있어.”
“무슨 부탁?”
“며칠 뒤 외할머니 생신이야. 직접 그린 그림을 드리고 싶은데 내가 그림을 못 그려. 좀 가르쳐 줄래?”
“나는 전통화는 못 해. 스케치라도 괜찮아.”
유정은 비웃듯 말했다.
“생신 선물로 스케치라니.”
이에 백림은 담담했다.
“내가 그린 거라면 어떤 그림이든 할머니는 좋아하실 거야.”
유정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못 가르쳐. 전문 강사를 찾아.”
“찾아봤어. 대부분 여자 선생님이더라. 지난번 일도 있고 해서 요즘은 여자랑 가까이 지내기가 조심스러워. 네가 가장 적절해.”
백림의 말에 유정은 냉소를 흘렸다. 아침에 노영인이 차려 준 식사를 잘도 받아먹더니, 이제 와서 여자와 접촉이 어렵다니 앞뒤가 달라도 너무나도 달랐다.
“안 가르칠 거야.”
딱 잘라 말하는 유정이었다.
백림은 깊은 눈으로 유정을 한참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유정의 마음이 묘하게 흔들렸다.
“내가 뭘 하면 되겠어?”
백림은 가볍게 웃으면서 물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어? 이미 다 풀었다고 하지 않았어? 앞으로 만나면 편하게 인사하기로 했잖아. 그런데 이게 네 인사법이야?”
그 말에 백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이 집 때문이야? 집은 네가 산다고 한 거잖아. 내가 억지로 시킨 게 아닌데 왜 나한테 그래?”
유정은 너무나도 맞는 말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분명 자신이 원해서 집을 샀지만, 백림이 맞은편에 살 줄은 몰랐다.
백림은 그런 여자의 생각을 읽은 듯 바로 덧붙였다.
“내가 맞은편에 사는 게 문제야? 네가 물어본 적도 없잖아.”
그 한마디에 변명할 여지가 사라졌고, 유정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목소리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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