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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2장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염정훈은 지금의 마음을 어떻게 형용할 수 없었다.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은 탓에 서정희와 정원정이 엉켜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몇 년 전에 크루즈에서 정원정이 약기운을 빌려 서정희에게 그런 짓을 하려고 했었다. 지금 그녀는 이미 이혼한 몸이고 정원정과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 해도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염정훈은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향기가 방안 가득했다. 향신료 같진 않고 샴푸나 바디워시 향 같았다. 서정희가 차갑게 물었다. “여긴 왜 왔어요?” 염정훈은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러게. 여긴 왜 왔을까? 불륜 현장 잡으러? 가슴 깊이 차오르는 복잡한 마음을 누르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방금 밑에서 아프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올라와봤어요.” “아니…” 서정희가 해명하려 했다. 그때 정원정이 선수를 쳤다. “염 대표님 아무 여자에게나 다 그렇게 다정하세요? 여자가 방에서 아프다고 하는 일이 뭐가 있겠어요. 염 대표님 그렇게 안 봤는데 눈치가 없으시네.” “제 주치의예요. 목숨이 걸린 문젠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제 병은 어떻게 치료하겠어요? 그러니 제가 선생님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근데 그쪽이야말로 저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렇게 날을 세우는 건데요?” “염 대표님이 뭘 하셨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 텐데요.” 서정희는 둘 사이에 아무런 부스럼이 생기지 않았으면 했다. 잘못하면 염정훈이 의심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서정희는 손짓을 하고는 정원정에게 그만하라고 눈치를 주었다. 서정희는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염정훈을 보았다. 그렇게 도도하고 안하무인이던 남자가 지금은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전 괜찮아요. 동생이 머리 빗겨주고 있었어요.” 약물 치료를 받은 후로 머리카락이 더디게 자랐다. 서정희도 여자라고 앞으로 머리가 예쁘게 자라지 않을 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정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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