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1장
완두콩이 그의 얼굴로 튀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염정훈은 열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완두콩 꼬투리를 바구니에 던지다 싶이 했다. “할머니, 저 못하겠어요.”
“젊은 사람이 화 내지 마. 도련님이라 이런 일 안 해봤단 거 알아. 근데 잘 생각해봐. 그쪽 눈 하루 이틀에 나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앞이 안 보이는 생활에 미리 적응을 해야지.”
염정훈이 멈칫했다. 제숙은 그를 단련시키려는 것이었다.
서정희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재회의 기쁨에 빠져 눈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충고를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할머니, 제 눈 얼마면 나을 수 있어요?”
“글쎄. 빠르면 서너 달, 늦으면 일 년 반 정도. 좋기는 여독이 다 풀린 후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 한번 받아봐. 눈은 고치기 힘들어. 그렇게 빨리 나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염정훈은 가슴이 철렁했다. 전에는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서정희 때문에 조바심이 났다. 눈 먼 장인이 어떻게 그녀를 다시 데려올 수 있을까?
그의 조바심을 보아낸 제숙이 그를 위로 하듯 손등을 토닥였다.
작고 거친 손이었지만 신비로운 힘이 깃든 것처럼 염정훈의 불안함을 풀어주었다.
염정훈은 걱정을 거두고 앉아서 계속 완두콩을 깠다.
소희가 서정희가 흙으로 빚어 구워 준 훈을 꺼내어 다리 위에 앉아 조용히 불기 시작했다.
그녀가 부는 것은 ‘Castle in the sky’ 였다.
싱그럽고 아련했다.
조용한 밤하늘 아래 달빛이 조용히 쏟아져 내렸다. 깨끗한 달빛이 모든 것을 정화했다. 염정훈의 마음마저 점차 평온해졌다.
그는 완두콩을 까는데 정신을 집중하며 세상을 느끼고 있었다.
아름다운 음악소리에 이름 모를 벌레가 합주를 시작했다. 저 멀리 새가 날개를 부추기는 소리, 부엉이가 나뭇가지에서 내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루었다.
조용하고 척박했던 그의 세상이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그랬다. 모든 정신이 서정희에게 가 있은 탓에 주위를 살피는 것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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